['세풍'사건 중간 수사발표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검찰이 6일 '세풍 (稅風)'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 1년여에 걸쳐 진행해온 수사를 일단 봉합한 것은 고육지책 (苦肉之策) 인 측면이 크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석희 (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이 귀국하지 않아 수사상황 진척이 더딘데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당 후원금 조사 등 편파성 시비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초 올 상반기 중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이 발효돼 李씨를 강제 귀국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미 상원의 심의가 지연되면서 조약 발효가 늦춰졌고 수사 역시 장기화됐다.

이로 인해 여야 대립이 첨예화하자 검찰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 형식으로라도 사건을 일단 묻어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 발표문에서 야당 후원회 계좌 추적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모든 수사가 적법하게 이뤄졌다" 고 해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여야의 공방이 계속될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발표문 곳곳에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를 세풍사건의 배후자로 사실상 지목했고 세풍자금 일부를 보관 중인 2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내사방침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드러난 불법자금 1백66억여원 외에 70억원의 추가 불법 모금 의혹도 제기해 놓았다.

검찰은 97년 대선 당시 ▶서상목 (徐相穆) 의원이 직접 대선자금을 조달할 직책에 있지 않았음에도 李전차장에게 모금을 부탁한 점 ▶모 그룹 회장이 李전차장에게 돈을 줬는데 李총재로부터 감사전화를 받은 점 ▶불법 모금 수표가 李총재의 지방여행 항공료로 지불된 점 ▶李총재의 사조직인 부국팀이 '국세청과 안기부를 동원하라' 는 보고서를 작성한 점 등을 열거하며 李전차장 귀국시 철저한 배후조사를 공언했다.

수사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李총재 측근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며 "배후 실체 규명이 향후 수사 과제" 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당장에 세풍사건의 본류는 일단락됐더라도 '곁가지' 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개인 유용부분에 대한 검찰의 내사방침은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세풍사건은 李전차장의 귀국 때까지 불안한 봉합상태로 남아있을 전망이다.

김정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