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정해남 전부장판사의 '아름다운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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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법관으로 있는 동안 있었을지도 모를 잘못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장기를 기증하고 재산의 3분의1 이상을 이웃사랑과 환경보호에 쓰겠습니다. "

40대 중견 법관이 퇴직과 동시에 미리 작성한 유언 (遺言) 의 일부를 공개,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수원지법 민사6부 부장판사로 일하다 지난달 31일자로 명예퇴직한 정해남 (鄭海南.46.사시21회.사진) 변호사.

그는 지난달 30일 법관 재직시절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인생설계, 평소 생각을 담은 퇴임사 겸 유언을 법원 전산망에 올렸다.

鄭변호사는 이 글에서 "15년간 근무해온 법관직을 떠나려 하니 법관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잠시 잊고 몸과 마음을 다해 업무를 처리하지 못했던 점, 지혜와 정성이 모자라 실수를 저지른 점, 남보다 더 부지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교만하고 게을렀던 점이 뼈아픈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슴 한편에 남았다" 고 토로했다.

이어 "새로운 시기를 여는 마당에 법관 재직시의 잘못을 속죄하고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는 심정으로 처와 함께 만든 유언 일부를 공개한다" 고 썼다.

유언 내용은 '뇌사 판정이 날 경우 장기를 기증하고 남은 육신은 화장하며 남은 재산은 그 3분의1 이상을 이웃사랑과 환경보호에 써라' . 그는 명예퇴임식 후 나이어린 두 딸과 아들에게 "너희들에게 일체의 상속을 하지 않으면 내가 욕심을 내지 않고 변호사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일러줬다.

그는 유언을 공개한데 대해 "결심을 보다 확고히 하려는 측면도 있지만 법조인들이 장기 기증과 화장, 재산의 사회환원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고 설명했다.

사회에 환원할 재산을 3분의1 이상으로 정한 것은 "보통사람에게 전재산을 환원하라고 하면 너무 과격한 것 아니냐" 며 "여러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정도로만 표시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鄭변호사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의 결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동료들의 전언에 따르면 충남 금산 출신인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경복고 유학시절엔 친구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했고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도 줄곧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자취를 해왔다.

광주.순천.인천 등지에서 판사로 일할 때도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변호사 개업을 결심한 것도 "동생 3명을 돌봐야 하는 등 넉넉하지 않은 집안사정이 이유였다" 고 전했다.

鄭변호사는 "어렵게 컸다" 고만 말한 뒤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 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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