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낮엔 분 단위로 업무 챙기는 워커홀릭…밤엔 부인과 외식·쇼핑 즐기는 애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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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후 9시6분 도쿄의 고급 주택지 덴엔초후(田園調布)에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2) 일본 총리의 자택 앞. 36분 전 귀가한 하토야마는 부인 미유키(幸·66) 여사와 팔짱을 끼고 집 앞 계단을 내려왔다. 함께 집 근처 단골 초밥집 스시코(<9BA8>幸)로 가기 위해서였다. 총리가 된 뒤에도 집에선 평소와 다름없는 애처가였다.

하지만 관저에선 ‘빈틈없는 일꾼’으로 변신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오전 8시에 집을 나서면 분 단위로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파벌·요정 정치로 많은 세월을 보낸 역대 자민당 총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취임 3주째로 접어든 그의 하루 일과는 ‘낮에는 일벌레’, ‘밤에는 애처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분 단위로 업무 챙기는 실무 총리=하토야마는 6일 오전 9시쯤 도쿄 나가다쵸(永田町)의 관저에 도착했다.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에게 하루 일과를 보고받은 뒤 오전 9시50분 행정쇄신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오전 10시1분부터는 각의를 주재했다. 이어 국가전략상·총무상·행정쇄신상 등 장관들을 잇따라 만났고, 일부 각료는 하루에 두세 차례 총리실을 드나들기도 했다. 하토야마가 실무를 강조하면서 총리실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외부 행사가 없으면 관저의 부관방장관들과 식사를 하면서 정책공약의 추진을 일일이 점검하기도 한다. 외교를 중시하는 그는 전화외교와 예방외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17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시작으로 외국 정상과 수시로 전화 회담을 갖고 있다. 6일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통화했다. 자민당처럼 금권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도 파격적이다. 지난달 17일 하토야마의 첫 공식 업무는 노조 대표단체인 렌고(聯合)의 다카기 쓰요시(高木剛) 회장과의 면담이었다.

◆일본 최고의 애처가=취임 나흘째인 지난달 19일 미유키 여사와 함께 고급 백화점 다카시마야(高島屋)를 찾아 38분간 쇼핑을 했다. 일본 방송사들은 “유엔총회에 부인이 입고 갈 옷을 챙기기 위해서였다”고 보도했다. 바쁜 와중에 부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출장도, 쇼핑도 함께 하는 것이다. 지난 2일에는 올림픽 유치 연설 때문에 덴마크 코펜하겐에 불과 왕복 16시간을 다녀오면서도 동부인했다.

한류 유명인들과 만나는 것도 부인에 대한 배려다. 열렬한 한류 팬인 미유키 여사를 위해 취임 직전 탤런트 이서진씨를 만났고, 도쿄돔에 온 배용준과도 만났다.

5일 저녁에는 부인과 함께 이승엽 선수와 2시간여 동안 저녁식사를 했다. 그는 “미유키는 나를 비추는 태양”이라는 말을 지금도 자주 털어놓는다.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역대 2위에 달하는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파벌 정치에 몰두한 역대 자민당 총리들과 대비되는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작용하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는 낮에는 평범한 총리 업무를 했지만 밤에는 전형적인 구시대 정치인이었다. 취임 사흘째부터 오쿠라 등 고급 호텔 내 고급 식당·바에서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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