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사외이사 확대' 운영실태와 재계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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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포항제철은 지난해 말 포항공대에 2백억원의 발전기금을 출연하는 안을 이사회에 상정했다가 사외이사들이 "돈을 정확히 어디에 쓰는지 분명치 않다" 고 반대해 결국 표결 끝에 부결된 뒤 보완을 거쳐 다음 이사회에서야 통과됐다.

포항제철은 97년부터 이미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50%를 넘어선 상태. 사외이사들은 ▶재정투자 ▶임원선임 ▶운영 등 3개 분과위를 구성해 이사회 전날 분과별로 토론을 벌인 뒤 이사회에 출석한다.

포철은 또 이사회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직원들에게 중계방송도 하고 있다. 이처럼 사외이사는 이사회를 활성화해 기업의 명실상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되도록 하는 촉매가 되면서 대주주의 독단을 막는 역할도 하고 있다.

반면 의사결정이 늦춰지고, 경영비밀이 누출되거나 사외이사가 월권할 가능성 등 부작용도 재계 일각에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26일 기업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외이사를 크게 늘리기로 하자 기업.금융기관마다 앞으로 충원해야 할 사외이사를 알아보고 이사후보 추천제도 등 후속조치에 대비하는 등 긴장하고 있다.

◇ 경영 투명성이 높아진다 = 가장 큰 장점은 총수나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 삼성전관의 사외이사인 연세대 정갑영 (鄭甲泳) 교수는 "제3자의 시각에서 합리적인 의견제시가 가능한 것이 이점" 이라며 "특히 공익과 소비자.투자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 경영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전문가 시각으로 의사결정을 체크하기 때문에 오류를 줄일 수 있고 (LG건설 사외이사 인하대 전용수 교수) , 기존 경영진의 독단을 막는 이점 (삼성항공 사외이사 김두식 변호사) 도 있다.

LG는 구본무 (具本茂) 회장이 대표이사인 전자.화학의 이사회에는 具회장이 늘 참석하며 이사가 아닌 다른 계열사 이사회엔 전혀 참석하지 않고 있다.

현대는 민간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사외이사제를 도입했고, 삼성은 외국인 사외이사까지 선임했으며, SK는 참여연대나 외국펀드로부터 추천받은 사람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등 기업들도 적극적이다.

포철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내부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는 등 잘만 운영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고 말했다.

◇ 부작용도 있다 = 정갑영 교수는 "사외이사가 많아질 경우 주요 경영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의 신속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고 지적했다.

김두식 변호사는 "사외이사는 상근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깊숙한 현안이나 정보접근에 한계가 있어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고 지적했다.

또 사외이사들이 대부분 외부 겸직을 많이 해 신속한 이사회 소집이 어렵고 정보유출 가능성도 일부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경련은 이날 '재계측 입장' 보고서를 통해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과 집행권 최대한 보장^사외이사 의무비율 폐지^기업에 이사 선임 자율권 부여 등을 요구했다.

◇ 금융권도 개편 중 = 은행들은 올초부터 이미 사외이사와 주주대표를 포함한 비상임이사수를 상임이사수보다 많게 하는 등 개편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빛.국민.조흥.외환.신한.하나은행 등은 은행장과 이사회 의장을 아예 다른 사람이 맡도록 했다.

비상임이사까지 참여하는 확대이사회는 은행마다 월 1회 정도 열리는데, 거액여신 승인이나 외자유치 등 은행경영의 중요 사항들을 결정하고 있다. 이사들의 참여도 적극적인 곳이 많아서 조흥은행의 경우 지난 4월 위성복 행장 취임을 계기로 은행장과 비상임이사들이 은행 전반의 경영원칙을 명시한 양해각서 (MOU) 까지 체결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실무에 익숙지 않은 비상임이사들이 과연 은행장을 비롯한 집행간부들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은행을 제외한 종금.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경우도 사외이사를 두고 있으나 회사측의 활용도나 사외이사들의 참여도가 모두 은행에 못미치고 있는 실정.

◇ 누가 사외이사로 활동하나 = 5대 그룹 상장사의 사외이사는 1백25명. 이 중 대학교수가 51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음은 변호사 (19명)다. 공인회계사.전직 경제부처 관료.전직 은행임원.언론계 인사 등도 포진해 있다.

사외이사들은 월 1회 정도 이사회에 참석하며 그룹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월급여 또는 자료수집비 명목으로 2백만~3백만원 가량을 받는다.

김동섭.고현곤.김종윤.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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