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 hot&pop] 가을이면 가슴 시린 남자 노래가 약이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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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그러니까 남자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서 ‘적극적 구애’에서 ‘소극적 구걸’ 쪽으로 모드가 바뀐다는 것이 저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늘 피던 담배를 피우는 데도 유독 먼 곳을 바라보며 연기를 길게 뿜거나, 회식 후 노래방 선곡이 댄스에서 발라드로 넘어가는 남자 동료들…, 아마 많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남자들을 위해 음악 컬렉션을 해보았습니다. 남자를 아프게 하는 가사 일부를 먼저 적고, 제목과 가수 그리고 설명 순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1. ‘네게 늘 주고 싶었던 조그만 선물을 사고, 네 미소를 떠올리네’
고백하는 날(1분50초 버전)-NO REPLY

특이하게 1절 구조로만 돼 있는 짧은 노래입니다. 물론 풀 버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 빨리 끝나는 오리지널이 이 가을에 더욱 잘 어울립니다. 리피트 모드로 계속 듣기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장시간 청취는 급작스러운 고백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이 있으니 10회 이상 감상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2. ‘그래 어떻게 지냈니, 정말 어떻게 지냈어 ’ ‘언제까지 니가 이렇게 예쁠지, 왜 바보처럼 두근대는지’
이렇게 좋은 날에도-할라맨

거침없이 고급스런 소울 음악을 만들어내는 신인그룹의 곡.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음악입니다. 최근에 우연히 옛 이성친구를 만나 그 여운이 오래 가시지 않는다면 이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우연이 필연인 것 같은 쓸 데 없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3. VOZ D’AMOR-CESARIA EVORA: 가사 내용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더 좋은 노래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남미 음악 같지만 아프리카 보컬리스트의 모나(MORNA)라는 장르의 곡입니다. 이국적인 분위기도 그렇지만, 멜로디 라인의 높고 낮음의 차이가 크지 않고 창법이 옆에서 조근조근 읊조리는 것 같아 외로움에 몸서리쳐질 때 이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음악’으로 아주 그만인 노래입니다.

4, ‘꿈을 향해 헤어진 우리, 너도 가끔씩은 내 생각을 했을까?’
신촌에서 홍대까지-지아

사랑의 아픔을 마음속에 담아놓고 살아갈 자신이 없는 분들은 차라리 이 노래를 듣고 과감하게 그녀의 번호를 누르십시오. 그러기 전에 먼저!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려야 합니다. 단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평생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에 위로를 삼으세요. 그전에 반드시 이 곡의 가사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번 들으십시오.

5. ‘Fooled by a smile, You regret, won’t forget what you’ve left behind’
FOOLED BY A SMILE-SWING OUT SISTER

팝 역사상 가장 달콤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프로젝트 듀오입니다. 어떻게 1980년대 중반에 오늘날 들어도 좋은 노래와 연주를 만들어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세련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저는 매년 가을이 되면 Corinne Drewery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이 곡이 들어있는 87년 발매된 앨범 ‘IT’S BETTER TO TRAVEL’을 꼭 꺼내어 듣습니다. 장담컨대 20년 전 음악이란 걸 믿기 힘드실 겁니다. 갑자기 이들의 음악성을 애써 강조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위의 컬렉션으로도 별 효험을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가을’은 원래 남자에게 잔인한 계절이거니 생각하시고, 그러나 음악을 찾아보는 시간만큼은 ‘외로움’에서 벗어났음을 기억하셔서 저를 용서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랍니다.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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