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미대화 추인용 6자회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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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일 조건부로 6자회담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미회담 결과를 보고 6자회담을 진행할 용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성명이 나오자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하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기존 입장에 비하면 한 발 진전된 입장이다. 6자회담 주최국이자 북한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약속한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위야 어떻든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진전된 입장을 밝힌 것은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당장 6자회담이 재개되는 것도,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한 것도 아니어서 상황이 급반전한 것으로 평가할 순 없다. 당사자인 중국은 김정일-원자바오 회담 결과를 두고 “중대 공동 인식”이라거나 “적극적인 진전”으로 환영한 데 비해 한·미·일은 아직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김정일 위원장 발언을 계기로 북·미 대화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사이에 북·미 양자대화의 성격을 두고 여전히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핵 문제는 북·미대화에서 논의하고 6자회담은 이를 추인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미국은 핵 문제 해결방안 논의는 6자회담 틀 안에서만 가능하며 북·미대화는 6자회담을 위한 징검다리로 간주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 차이가 어느 정도 해소돼야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 방문이 이뤄질 전망이다.

미 국무부는 회담 결과가 알려진 직후 “6자회담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에 (북한을 제외한) 5개국 사이에 의견이 일치돼 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에도 5자 의견이 일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미 정부의 이런 입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 20년 동안 북핵 문제 진행과정을 감안할 때 다른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지만 행동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만을 믿고 섣불리 핵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압박과 대화’라는 투 트랙 정책은 최소한 북한의 핵포기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9일과 10일 한·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회담에서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할 필요가 있다. ‘그랜드 바긴’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고 ‘6자회담 틀 안에서 핵 문제 해결’과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안보리 제재 유지’라는 현재의 5자 간 합의가 앞으로도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양자대화를 앞둔 미국이나 북한과 특수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과는 긴밀한 정책 협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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