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4.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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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때는 서울 문리대 마당이었고 지금은 대학로가 돼버린 그곳에 어느 가을밤이지요. 대학교에선 처음 있는 탈판이었는데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른거리는 횃불 하며 울긋불긋한 가면에 그 의상, 흐드러진 음악이며 춤사위며…. 뭔가 불온하고, 뭔가 멋있는 그 분위기에 마음을 뺏겨서 그후로 우리들 모두 희완형, 나중에는 '교주' 로 불리는 그 인간을 따라다니며 막걸리 깨나 마셨습니다.

춤은 별로 안 가르쳐주고 시장 바닥에 앉아 술만 자꾸 마시는 거 있죠. 그런데 그게 힘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무가 바리공주' 를 바탕으로 해서 환상적인 만화영화의 대본을 꾸미고 있는데요. 그게 다 그 정서와 물려있습니다.

저의 데뷔작인 '서울예수' 나 '성공시대' 의 풍자나 해학이 거기에서 시작됐구요. '나쁜 영화' 와 '거짓말' 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양식을 실험해볼 수 있던 힘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탈춤운동이라고도 하고 민족문화운동이라고도 하는 그 움직임의 의미는 그런 겁니다. 그 중심에 채희완이 있었고 한두레가 있었습니다.

한두레는 다소 뒤떨어진 코뮨의 냄새를 풍기긴 하지만 그래서 망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지금 그이들이 선생님으로 남고 배추장사 하고 치과의사 하고 밥짓고 애 키우며 그냥 살고, 혹은 그냥 야인으로 몰려다녀도 모두 존경스럽고 예쁘기만 한데요.

물론 그 관련 아래 사회적.예술적 성취를 이룬 이들도 적지 않겠지요. 하지만 높은 성취와 낮은 자세가 무슨 차이 있겠습니까. 그 이상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데요.

누가 압니까. 이들이 품은 씨앗이 다시 발아하고 서로 거름되어서 소위 21세기 문화시대에 새로운 콘텐츠로 꽃피어날지…. 그리고 어떤 형태든 공동체적 이상을 향해 이 사회가 더 전진해갈지….

장선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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