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전문기자리포트] 대우 해외채권단의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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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안된다고 했는데도 해외채권기관들이 대우 채무에 대해 빚보증을 해달라고 한다.

명분은 국내채권기관에 추가담보와 긴급자금이 제공됐으니 같은 대접을 해 달라는 것이다.

안되면 자금회수하겠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친다.

정부는 여전히 반대다.

이는 엄연히 민간기업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만일 민간기업의 해외채무를 국내금융기관이나 정부가 빚보증해 주는 경우 이는 좁게는 금융기관.정부, 넓게는 한국 경제의 부실요인으로 인식돼 오히려 한국의 대외신뢰를 더 급속히 추락시킬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강경한 정부 입장에 또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작금에 일고 있는 "채권기관도 부실여신에 대해 상당부분 책임을 져야 하고 위기극복에 참여해야 한다" 는 국제적 여론이다.

또 그래야 대우가 더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정부도 "외국채권기관을 국내채권기관과 같이 대우하겠다" 고는 한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같은 대우' 는 빚보증을 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내채권기관처럼 해외채권기관도 대우의 채무상환을 만기연장해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입장은 국내금융기관에나 통하는 강요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정부의 영향력 밖에 있고, 또 한국 외에도 장사할 곳이 많은 해외금융기관이 그런 '지시' 를 듣겠느냐는 말이다.

잘못해서 이들이 올해 안으로 돌아온다는 대우의 외채 55억달러를 고스란히 받아가거나 자금회수에 들어가면 더 큰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져 대우가 채무상환 불능상태에 빠지면 자기네만 손해라는 사람도 있다.

채무 전액을 떼이기 때문이다.

채권기관 입장에서는 상환불능보다 만기연장이 더 낫다는 것이다.

또 대우 채무가 만기연장이 되지 않고, 설사 외환시장에 대한 공격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를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의 정부 분위기다.

6백2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입장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금 한국은 경기회복세 유지와 금융시장 안정이 급선무이고, 최근의 수입급증으로 국제수지 흑자 유지도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금융기관의 공격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어떤 형식으로든 빚보증을 해 주지 않으면 그것이 한국 정부나 국내금융기관들이 대우문제를 단순한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지불불능 (insolvency)' 문제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문제가 결국 해결될 문제로 본다면 국내금융기관이나 정부의 돈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므로 빚보증을 해 줄 것이고, 따라서 빚보증을 거부한다는 것은 대우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만일 (해외금융) 시장이 빚보증 거부를 그런 신호로 받아들이면 대우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우 해외채무 규모도 문제지만 대우에 코가 꿴 70개가 넘는 해외채권기관으로 보나, 또 5백89개에 달하는 해외사업장으로 보나, 대우문제는 이제 국가적 문제가 돼버린 셈이다.

그만큼 대우문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서두르기 위해, 또 이왕 정부가 직접 나서기로 한 이상 어떤 형태로든 해외채권기관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는 대우문제를 둘러싼 대우.국내금융기관.정부와 해외채권기관간의 싸움이 국내경제에 던질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실리를 위해서도 그렇다는 얘기다.

98년 정부 빚보증이 있었기에 국내금융기관 외채의 만기연장이 신속하게 이뤄졌고 또 그 덕에 비교적 낮은 가산금리로 상환조정이 가능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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