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세제개혁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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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 정권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병행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민심 이반을 겪고 있다. 때문에 보다 본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현 정권은 우리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조선의 건국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통한 권력투쟁 승리의 단순한 산물이 아니었다.

이성계는 "백성에게 세금을 걷되 재생산이 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게 소득의 10분의1만 거두라" 는 원칙을 세워 민심을 얻었으며 과전법 (科田法) 이라고 하는 세제개혁이 그 뒷받침을 했다.

이후 세종 대의 공법 (貢法) , 세조 대의 직전법 (職田法) , 영조 대의 균역법 (均役法) 등 조세제도가 한 시대의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됐다.

대원군도 행정구역내 세금 할당액을 자치적으로 운용한 동포제 (洞布制) 를 국가의 제도로 수용, 이를 호포법으로 공식화해 민 (民) 의 지지를 받았다.

이같은 역사상의 세제개혁은 사회변화와 민의를 수렴했기 때문에 백성은 이를 환영했던 것이다.

한말 일본의 꼭두각시라고 비웃음당한 갑오정권 아래에서도 세제개혁.세정혁신이 추진되자 '백성은 다시 살게 됐다' 고 황현은 '매천야록' 에서 밝혔다.

지금 온 나라가 후 (後) 3金시대의 도래, 특별검사제도의 도입 여부 등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절대다수의 국민은 건강한 삶의 내용을 궁리하고 있다.

이같은 민심의 바탕에 깔려 있는 바람을 수용하는 것이 큰 정치라고 한다면 그 알맹이는 세제개혁이다. 그것도 흔히 거론되는 면세폭 확대 등의 온정주의적 시혜성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세제개혁은 상속과 세습이 아니라 공정한 게임을 보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상의 사고전환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청빈론을 덕목으로 여기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공정한 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일깨우는 '청부론 (淸富論)' 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본다.

이종범<조선대 박물관장.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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