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어디 있는 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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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사발면에 손톱만한 인물을 얹어 놓은 함진씨의 사진작품 ‘애완’.

28일 서울 화동 pkm갤러리에서 시작하는 '함진 개인전'을 찾는 관람객은 바지나 작업복 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 평범한 미술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전시장에 놓인 조각품을 찾는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겠다.

작품을 보려면 우선 돋보기를 들고 납작 엎드려 기어야 한다. 이번 전시의 핵이라 할 2층 전시장은 자칫 흰 벽면만 보여 지나치기 쉽다. 높이 1㎝, 너비 7㎜의 극미세 인물이 전시장 밑바닥 틈을 ㄷ자형으로 달리고 있다. 점토 애니메이션처럼 이야기를 품은 그들을 만나려면 무조건 항복, 투항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눈에 쥐가 난다"는 작가 말이 실감날 만큼 함진(26)씨의 작품 세계는 극미세의 세계다. 이쑤시개와 핀셋이 주요 제작 도구다. 1시간 꼬박 공을 들여도 고작 2㎝를 나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제목은 '애완(愛玩)'이다. '사랑하며 놀다'라는 단어 그대로의 뜻을 작가는 정교하게 만든 작은 모형의 세계 속에 펼쳐놓았다. 삶이란 그렇게도 좁은 공간 속에 갇혀 웃고 울고 땀흘리고 피튀기며 보내는 별 것 아닌 제한된 감옥살이인 것이다.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거리며 작업하는 작가는 진흙이나 점토로 손톱만한 동물과 인간을 만들며 생각한다. "어머니의 배꼽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미술평론가 원형준씨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탐닉하고 그 속에 들어가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안락하게 느꼈던 곳을 찾는 본능이라 한다. 여성, 즉 어머니의 배 속은 아무 고통, 걱정 없는 낙원이요 유토피아였으니 남성의 무의식 속에는 살벌하고 고독한 이 세상을 벗어나 그 속에 들어가려는 끝없는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고 함진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9월 21일까지. 02-734-946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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