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한독약품 소화제 훼스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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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약품 전 사장 김조형(75) 고문은 입사 첫해인 1959년 영업을 하러 나갔을 때 약국에 전시돼 있던 플라스크를 또렷이 기억한다. 꽁치 한 마리를 머리부터 거꾸로 넣은 플라스크엔 훼스탈 녹인 것이 들어 있었고, 꽁치 머리는 훼스탈을 녹인 묵처럼 생긴 액체에 담겨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김 고문은 “육류를 소화하는 데 효과적인 훼스탈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한 광고 전시물이었다”고 회고했다.

58년 독일 훽스트(현재의 사노피 아벤티스 파마) 제품을 수입해 팔기 시작한 한독약품 훼스탈은 국내 최초의 서구식 소화제다. 효소 성분이 들어가 육류 소화에 효과적이었던 터라 소비자 호응이 대단했다. 이에 김신권 명예회장은 독일 훽스트에 건너가 국내 자체 생산을 위해 훽스트 임원진 설득에 나섰다. 처음에 훽스트 임원들은 “한국전쟁 직후여서 기술도 시원찮을 텐데” “정국도 불안정하지 않나”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지금까지 한번도 지불 납기를 어긴 적이 없고 국내 생산을 해야 제품 값이 싸져 시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득, 허락을 얻어 냈다.

한독약품은 59년 4월 독일 설비와 기술을 도입한 서울 상봉동 공장을 완공하고 비행기로 원료를 받아 훼스탈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독일 기술자와 생산 기사가 상주하며 무작위로 샘플을 골라 항공편으로 독일에 보내 약의 함량과 품질을 검사했다. 전보로 결과가 통보되는 날이면 공장 생산직원들이 다 모여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초기엔 불합격 판정이 떨어져 한 라인에서 나온 생산량 전체를 땅에 묻기도 했다. 특정 성분의 함량이 부족하다는 통보에 다 만들어 놓은 당의정을 녹여 빻은 뒤 부족한 효소를 넣고 다시 약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소화제가 명멸하는 속에서도 강력한 소화력과 안정성을 인정받아 86년 한 해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95년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수컷이 위궤양으로 소화에 고생할 때 훼스탈을 빻아 고기에 넣어 줬다는 일화도 있다. 꾸준히 정제 소화제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 지난해까지 모두 30억 정이 넘게 팔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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