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박태환에게 체전 출전 강요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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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7월 ‘로마 쇼크’를 겪은 박태환(20·단국대·사진)은 여전히 괴롭다.

측근 인사들이 그의 의사와 반대로 올해 전국체전 출전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체전은 20일 대전에서 개막한다.

박태환은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참패 이후 장거리 종목에 치중키로 하고 훈련해 왔다.

그러나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노민상 감독을 비롯해 수영연맹 전무까지 나서 박태환에게 체전 단거리 종목에 나서도록 권유하고 있다.

체전에 나갈 경우 박태환은 본적지인 서울시 대표로 나가게 된다.

박태환의 체전 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시체육회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한수영연맹 정일청 전무가 서울시수영연맹 전무이며, 노민상 대표팀 감독은 서울시청 감독을 겸하고 있다. 특히 노민상 감독은 “체전 참가도 훈련의 일환”이라며 출전을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박태환은 체전 참가 대신 그동안 해온 대로 장거리 훈련에 집중하기를 원하고 있다.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령 아시아 신기록이라든가 하는 확실한 목표를 두고 체전 참가를 준비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의 메달을 따주기 위해 참가하라는 건 선수를 위한 게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체육회 측은 박태환 자신도 모르게 참가 신청까지 해뒀다. 그것도 주종목인 중장거리 대신 메달이 다수 걸린 단거리와 계주 종목 일색이다. 열거하자면 자유형 50m와 100m, 혼계영 400m와 계영 400m·800m 등이다. 박태환의 출전이 선수보다는 서울시의 메달 획득을 위해서라는 말이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박태환은 8월 태릉선수촌 입촌 후 장거리 훈련으로 방향을 명확하게 잡았다. 로마대회 참패가 단거리·중장거리를 오가느라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 뒤다. 장거리로 훈련 방향을 잡은 기구는 수영연맹 특별강화위원회. 노 감독과 정 전무가 주축 멤버로 있는 회의체다.

그런 결정을 내린 당사자들이 이젠 “체전 단거리 종목에 출전하는 게 훈련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아버지 박씨는 “태환이가 체전에 불참하면 ‘수영연맹과 갈등을 일으킨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며 욕만 먹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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