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서봉수-조훈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살긴 했지만 피투성이…돌 던진 서9단

제8보 (122~141) =121의 강수가 간신히 퇴로를 찾아낸 백의 앞길을 저승사자처럼 막아선다. 전보에서 설명한 것처럼 122의 보강은 눈물겹지만 어쩔 수 없다. 123으로 쓰라린 단수를 얻어맞으면서 백의 행로는 다시 기구해졌다.

124, 126은 고통의 행마. 徐9단은 비틀거리면서도 끈덕진 생명력으로 다시금 연결을 도모하고 있다. 이때 등장한 127이 비수처럼 옆구리를 찔러온다. 피가 펑펑 쏟아진다.

曺9단은 흑와 등 적진 속에 던져진 사석들을 절묘하게 이용해 백을 완벽한 사지 (死地)에 몰아넣었다. 중앙 아니면 하변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

徐9단은 가물거리는 정신 속에서도 장고를 거듭한 끝에 128, 130이란 필사적인 도주로를 찾아냈다. 흑이 대마를 통째로 잡으려면 131이 아니라 136 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백 '가' 의 반격에 상황이 복잡해진다. 曺9단은 이쯤해서 피투성이의 백을 살려주기로 했다. 연결을 허용하고 대신 131, 133, 137, 139로 연속 공격의 열매를 거둬들인다. 백은 살점은 다 뜯기고 겨우 목숨을 구했으니 살았으되 죽음만 못하다.

병법에 이르기를 "사지에 빠졌을 때는 즉각 전력을 다해 싸우는 길만이 유일한 살 길" 이라고 했다. 이 판의 후반을 보면 그 말이 참으로 옳다.

백은 중앙의 들이 공격당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사지에 빠진 것과 같았다. 따라서 그 즉시 최강수를 총동원해 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우는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徐9단은 이때의 상황을 글렀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미한 희망에 기대며 옥쇄를 미뤘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지는 코스를 밟아버린 것이다. 141에 이르러 집을 헤아리면 흑집은 어언 55집을 넘어섰는데 백은 40집 언저리. 徐9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다.

박치문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