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의 개혁 다짐, 행동으로 보여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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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어제 전국검사장회의에서 천명된 검찰 수사 패러다임의 변화 선언이 신선하다. 특정 범죄 혐의를 수사하려고 다른 혐의로 피의자를 구속하는 별건 수사, 수사 대상자의 주변 인물들을 낱낱이 파헤쳐 압박하는 표적수사 같은 검찰의 대표적 수사 악습에 대한 대대적 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까닭이다. 이 같은 ‘김준규식 검찰 개혁’이 환영할 일이며 궁극적으로 목표한 검찰의 위상도 대체로 올바르게 좌표 설정됐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라는 볼멘소리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는 땅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길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편파 수사 시비 방지 대책과 부당한 장기 내사 금지 등 또 다른 악습을 개혁과제에 포함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무리한 수사 관행은 곧 지나친 실적주의 탓이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초 외환은행 헐값 매각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현대계열사 채무탕감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옮겨갔지만 결국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쓰다 만 회고록에서 “우리는 진실엔 관심이 없다. 사건으로 만들어 처리하면 된다”는 대검 중수부 수사관의 말을 인용한 뒤 “그들(중수부)은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외에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썼었다.

이런 실적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철저한 사후 평가를 하겠다는 것도 잘한 일이다. 그동안 무리한 수사로 ‘한 건’ 한 인물이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한 예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편리한 관행을 포기하자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진척되지 않는 수사 결과에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야 한다. 그런 변모가 “시대 요청이자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검찰 개혁은 또 한번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이다. 김 총장의 말처럼 대한민국 검찰이 “신사적인 수사”를 통해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등대”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