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5. 압구정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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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압구정동의 오렌지족, 신로데오족은 옛말, 요즘은 노블레스족이 이곳을 이끌고 갑니다' 노블레스족이란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 체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특별한 귀족 소비계층을 일컫는 말. 서울의 '소비 특별시' 인 압구정.청담동 일대가 매일 변신하며 꿈틀거리고 있다.

상인들은 "이곳에선 패션이건 음식이건 주력 소비 군단 (軍團) 인 최고급 층의 구미에 맞춰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며 "수입 의류점, 고급카페는 이태리.프랑스 등 해외 현지와 똑같이 유행을 따라 잡고 있다" 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이 일대의 알짜배기 핵심 상권이 시류 (時流)에 따라 현대백화점→압구정동→남청담동→북청담동 등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당초 압구정동은 지난 73년께 배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부상했다. 주로 상류층이 이곳에 모여 살자 고급 쇼핑상가도 함께 들어서기 시작한 것. 80년대부터는 로데오 거리가 급부상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오렌지.야타족이 이 지역을 활보해 관심거리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기심 어린 젊은이들이 신촌.대학로에서 이곳으로 모여 들며 붐볐다. 그러자 일부 오렌지족은 홍대 쪽으로 둥지를 잠시 옮겼다가 다시 압구정동 길 건너편 남청담동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신로데오족으로 등장한 것.

그러나 이들은 90년대 말부터 또다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 받자 요즘은 아예 북청담동쪽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미국 유학생 김모 (22.여) 씨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오전 시간에는 미장원에 들러 몸치장을 한 후 북청담동 일대의 유명 '퓨전음식점' 에 들러 식사한다" 며 "친구들과 함께 수입의류가 많은 청담동 부띠끄 거리에서 쇼핑을 즐긴다" 고 말했다.

한편 로데오거리로 대표되던 압구정동은 젊은이들이 돈 없어도 즐기는 대학로 같은 거리로 변했다. LG패션의 서영주씨는 "로데오거리는 이젠 2만원이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됐다" 며 "이와 대조적으로 청담동 일대는 이 돈을 가지고 가면 즐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다시 되돌아 올 정도" 라고 말했다. 이곳은 최소한 10만원 이상을 들고 가야 웬만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다.

서울 시립대 도시사회학과의 송도영 교수는 "사회적인 상류층은 항시 자신들만의 특별함으로 차별성을 추구하게 마련" 이라며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이를 모방하게 되면 그들은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 다닌다" 고 말했다. 압구정동의 역동적인 모습을 이런 사회심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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