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호주에 나무심는 만큼 日서 공해 내뿜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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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앞으로 공장을 더 돌리고 싶어도 환경규제에 걸려 못할 경우 남의 나라에 나무를 심어주면 해결이 가능할 전망이다. 외국에 심은 나무가 빨아들인 이산화탄소만큼 본사 공장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생소하게 들리는 얘기지만 일본의 도쿄 (東京) 전력이 호주 동남부의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와 손잡고 이같은 '공해배출권 거래' 를 시작했다.

도쿄전력은 뉴사우스웨일스의 그라프톤 및 터멋에 4만㏊ 규모의 삼림을 조성키로 하고 주정부와 함께 육림 (育林) 사업에 관한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8일 밝혔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숲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를 일종의 재산권으로 인정해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 세계 주요 기업에 육림사업을 제의했다.

각국 정부가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총량을 규제하도록 한 97년의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한 교토 (京都) 협약' 이 육림사업을 이산화탄소 삭감대책으로 인정해주기로 하자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재빨리 멍석을 깐 것이다.

그 첫 참가자가 일본의 도쿄전력. 이 제도의 골격은 한 기업이 뉴사우스웨일스에 숲을 조성해 주정부로부터 일정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다고 공인받으면 본사 공장에서 이산화탄소를 그만큼 더 내뿜을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인정해주는 식이다.

그 기업의 호주 소재 삼림이 빨아들인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본사의 이산화탄소 삭감실적으로도 잡히므로 추가로 돈을 들여 공해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또 나무가 일정 연령이 되면 베어내 목재로 판매할 수도 있다. 게다가 육림을 통해 얻은 '이산화탄소 추가 배출 자격' 을 다른 기업에 팔 수도 있다. 이른바 '공해배출권 거래' 다. 이미 미국의 시카고 선물시장에서는 2년 전부터 이같은 거래가 시작돼 연간 거래 규모가 35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도쿄전력은 우선 내년에 2억엔 (약 20억원) 을 들여 2천㏊의 소나무숲을 조성한 뒤 매년 식목면적을 늘려 2009년까지 4만㏊로 확장할 계획이다. 10년간 총사업비는 80억엔.

이 숲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20만t으로 출력 60만㎾의 화력발전소를 1백일간 가동시켰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규모다. 이에 따라 도쿄전력은 발전소를 매년 그만큼 더 가동시켜 전기판매수익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도쿄전력은 또 이산화탄소 20만t을 추가로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므로, 이를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 철강업체 등에 팔 수도 있다. 도쿄전력은 일본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도쿄전력측은 "지구상 어디든지 간에 숲을 조성해 공기를 맑게 한 만큼 본사의 오염을 추가로 배출할 수 있도록 인정해주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라며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거래관행의 노하우를 쌓기 위해 육림사업에 참가했다" 고 밝혔다.

도쿄 =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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