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 기본바탕은 수행…박현著 '나를 다시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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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변증법적 지평의 확대' (85년) '우리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95년) 등으로 글쓰기의 저력을 내보였던 박현 (41. '한배달' 학술위원) 씨가 '나를 다시하는 동양학' (바나리.1만원) 을 펴냈다.

저자에 의하면 이번 책 발간의 동기는 동양학에 대한 두가지 편견, 즉 그것을 철학의 한 분류로만 생각하거나 심지어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닌 문화의 한 갈래로 간주하는 그릇된 흐름을 바로 잡으려는데 있다.

사실 동양학은 유교.불교.도교 등을 아우르는 사상 혹은 과거에 대한 문화적 향수나 정신적 풍요 등을 논하는 비실용적 영역 쯤으로 인식된다.

게다가 그 '동양학' 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드러나듯 지역적 연고를 가진 학문 수준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더 아쉬운 것은 그것이 한국학을 포함하는 범위로만 이해될 뿐, 한국학을 중심에 놓고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저자는 '인간 중심의 문화' 로서의 동양학 실체규명 작업에 몰두해 들어간다.

우선 그가 던지는 질문은 "나는 내 몸을 내 뜻대로 끌고 다니는가" 다.

하지만 대답은 "주체적 자아혁명의 부재로 '참된 나' 는 실종상태" 라고 이어지고 만다. 여기서 그가 건져올린 동양학의 바탕개념은 '새롭게 한다' 는 의미를 가진 '닦음' (수행) 이다.

언어적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 저자는 옛 만주어의 원형이 남아 있는 초기 금문 (金文) 과 옛 일본어 신대 (神代) 문자까지 추적하고 있다.

결국 그가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 만난 것은 '샹' (닦음의 체계.삶의 체계) 이라는 단어. "그것은 곧 마음이며 마음은 존재의 씨앗이다. 몸의 진보란 결국 마음이 옷을 갈아 입는 것과 같다. "

그렇게 형성된 인간상은 '참 사람' , 그들이 달려가야 할 이상향은 '바나리' 다.

저자의 고어 해석에 의하면 바나리는 '신이 땅 임한 곳' 이라는 뜻이다.

언젠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가 사라져버린 바나리를 되찾기 위해선 닦음을 통한 '기 (氣) 의 회복' 이 불가피하다.

저자는 이를 율려 (律呂) 와 구궁 (九宮) 의 논의로 이어간다.

'여' (呂 : 사람의 가슴뼈와 등뼈) 는 몸의 물질적 구조, 율 (律) 은 사람의 행동체계를 의미하며 구궁은 우리 몸의 아홉 집을 지칭하는 것인데 인간 존엄성의 뿌리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저자가 섭렵하고 있는 언어와 학문의 세계는 넓다.

이는 그가 진행 중인 '동양학 너머의 동양학' 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그는 한국적 동양학의 원형을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책에서 수행학과 동양학을 일치시키려 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동양학의 새 지평은 원형의 발견을 통해 열린다는 저자의 믿음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위서논쟁에 말려 있는 '한단고기' 에 대해 비교언어학적 접근을 시도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별도 수확이다.

" '한단고기' 에서 상상력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언어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는 것. 관련 책은 '옛 언어로 풀어보는 한단고기의 세계' 라는 이름으로 8월말 선을 보일 예정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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