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산가족 상봉은 호의 아닌 인도주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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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3개월 만에 재개돼 남측 이산가족 97명이 북한에 사는 가족 229명과 26일부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등에서 만났다. 29일부터 2박3일간은 북측 이산가족 99명이 남측 가족 449명과 만나기로 돼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던 상봉행사가 뒤늦게나마 재개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상봉에는 특히 국군포로 한 가족과 19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 두 가족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당사자들로서야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특수 이산가족’들은 애간장이 탈 것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북한에는 아직 560명의 생존 국군포로와 494명의 미귀환 납북자가 있다. 그러나 이번 추석 상봉을 포함해 2000년 이후 실시된 17차례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가족과 만난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28명에 불과하다. 일반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가뭄에 콩 나듯 끼워 넣는 식으로 그들의 아픔을 달랠 길이 요원하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이다.

물론 더 중요한 선결 과제는 상봉행사의 정례화다. 남북관계의 부침과 무관하게 이산가족 상봉은 정례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누적 신청자 수는 12만7000명에 달하지만 그중 약 3분의 1인 4만7000명은 이미 고인이 됐다. 생존해 있는 신청자들도 75%가 70대 이상의 고령이다. 언제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운(運)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그들에게 남은 시간 자체가 얼마 없는 것이다. 상봉행사는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정례화되고 확대돼야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측의 장재언 적십자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이번 상봉이 북측이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이뤄진 만큼 남측도 상응하는 모종의 호의를 보여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은 유감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호의나 배려가 아니라 100%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임을 남북 당국은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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