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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내각, 문과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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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이 출범하면서 이공계 출신 정치지도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도쿄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정통 공학도로, 일본 총리로서는 드물게 이공계 출신이다. 그뿐 아니라 새 내각의 2인자 격인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도 도쿄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이고, 비서실장 및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을 맡은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의원도 주오(中央)대 이공학부를 졸업했으니, 하토야마 내각은 명실상부하게 이과(理科) 내각이라 부를 만하다. 이에 대해 교토(京都)대 다케우치 사와코(竹內佐和子) 교수는 “이과계 지도자는 환경이나 자원 문제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와 과학의 융합시대가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지 9월 21일자 16면>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사정은 판이하다. 우리나라도 녹색성장과 자원 확보가 국가의 중요 목표라고 말하지만, 이를 추진하기 위한 이과계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 정부 중앙부처의 차관급 이상 127명 중 이공계 출신은 9명에 불과해 전체의 7%밖에 되지 않는다. 장관급으로는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석·박사 과정에서는 정책학을 공부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일한 형편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비서관급 이상 50여 명 중 이공계 출신은 3명(6%)밖에 없고, 특히 수석비서관급에서는 이공계 분야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이처럼 이공계 고위 인력이 없기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인데, 이 위원회를 이끌어가는 위원장(대통령), 부위원장(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간사(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 모두가 과학기술 비전문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학기술 정책이 피상적으로 입안·집행되거나 정치적인 입김에 흔들릴 위험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문제를 보자.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의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통합돼 교육과학기술부가 출범했는데, 과학기술은 주로 미래지향적인 이슈인 반면 교육은 당장의 현안 문제가 많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교과부 장관이나 수석은 교육전문가가 맡게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이들 과학기술 비전문가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다. 이 밖에 과거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 발전을 총괄해 왔던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생긴 방송통신위원회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처럼 비전문가가 운영하면서 정책의 과감성이 없어지고 상황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많은 과학기술인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도 미래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 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연구개발예산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고,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숙원사업인 PBS제도(성과 위주 예산제도)의 개선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이란 선의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가 나와야 되는 것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형 연구개발부터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가는 선진국형 연구개발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지금이, 과학기술의 요체를 알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연구개발 정책을 입안·집행할 수 있는 전문가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부 조직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정부 조직으로 국정을 운영한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그동안의 국정 운영 결과를 돌이켜보면,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이나 정부통신부의 해체는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보다는 우려했던 부작용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도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특별보좌관과 IT특별보좌관을 임명하기도 했으나 여기에 소속된 행정조직이 없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임시방편적인 처방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보고 조정할 수 있는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를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앞으로 녹색성장도 가능하고, 선진국 진입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시급한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