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일은행 제값 받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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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일은행의 해외매각협상이 숱한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다.

협상결과는 아직 공식발표되진 않았지만 금융감독위가 "뉴브리지측과 주요 쟁점사항에 합의했고, 현재 합의문 작성과정에 있다" 고 밝힌 점으로 미뤄 사실상 타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협상이 시간을 끄는 과정에서 제일은행은 자본금이 완전 잠식되고 신규대출이 중단돼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였었다.

매각협상 타결로 이 부실덩어리의 경영이 정상화되고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되는 계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뒤늦게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협상타결의 시점 및 매각조건과 관련, '헐값매각' 논란이 일고 있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가 없다.

협상타결의 급진전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직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일 및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은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약속사항이었고, 국제신용평가기관들도 이의 이행 여부를 우리의 대외신인도 평가에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삼고 있다.

金대통령이 미국 조야에 매각협상 타결소식을 '선물' 로 전하며 구조개혁 의지를 재천명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 타결시한에 쫓긴 나머지 제대로 값을 못받는 경우다.

매각조건은 겉으로 보아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모두 7조원 투입해 제일은행을 건전은행으로 만든 다음 액면가 5천원에 주식 51%를 뉴브리지에 넘겨주기로 했다.

3조2천억원을 쏟아부은 한빛은행보다 건전성은 더 낫다고 한다.

현재 한빛은행 주가는 9천원이 넘는다.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한빛은행보다 싸게 팔리는 것은 외견상 큰 손해다.

게다가 인수후 1년간 발생하는 부실여신은 전액을, 2년째 발생하는 부실여신은 20%를 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했다.

뉴브리지측은 당초 5년간 보전을 주장하다 3년간으로 물러섰고, 마침내 2년으로 양보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측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자산건전성 평가에 끝내 국제적 기준이 수용됨으로써 종래 우리 기준으로 멀쩡하다고 판단되는 여신들이 부실여신으로 분류돼 회수조치되거나 우리 정부가 보전해야 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공적자금으로 부실을 긁어내 해외에 파는 마당에 물론 우리 잇속만 채울 수는 없다.

당장의 득실보다는 대외신인도 향상과 선진경영기법 도입을 통한 국내금융산업 발전이라는 무형 (無形) 의 이익을 중시하는 장기적이고 전향적인 자세 또한 필요하다.

뉴브리지가 경영을 잘 해 주가가 올라가면 49%를 갖고 있는 정부도 그만큼 이득을 본다.

매각조건보다는 앞으로의 경영이 더 중요하다.

선진.첨단경영으로 국내은행들의 모범이 되고, 건전금융풍토 조성과 관치금융 시정의 촉매제로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함으로써 '헐값매각'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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