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든 못하든 똑같은 월급 공기업 조직문화 꼭 공산당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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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츠 고 윈 파이브(Let’s go Win Five).” 인천국제공항 직원들은 요즘 회의나 회식 자리에서 수시로 이 구호를 외친다. 인천공항은 올 5월 세계 공항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우수 공항상’을 4년째 수상했다. 이 구호는 5연패를 달성하겠다는 임직원의 의지를 모아 이채욱(62·사진)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이 사장은 지난해 9월 인천공항 개항 후 공모를 통해 취임한 첫 민간인 CEO다. 이 사장을 24일 만나 공기업 경영 1년 경험과 향후 계획을 들었다.

이 사장은 “고여 있는 물 같은 공기업 문화에 경쟁과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그러나 “공기업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보상 시스템’이다.

그는 “공기업은 흑자를 내는 곳이든 적자를 내는 곳이든 월급이 다 똑같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연차만 같으면 월급이 똑같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의 경우 고과를 잘 받거나 못 받아도 월급은 똑같고 인센티브에서 월급의 ±3.5%의 차이를 둘 수 있다. 이 사장은 “세상에 우리 같은 기업이 어디 있느냐. 경쟁력이 생기겠느냐. 일 많은 사람은 툴툴거리며 불만스럽게 일하고 일이 적은 사람은 아무 일 안 하려 하고 조직문화가 꼭 공산당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뽑아 훈련시키고, 제대로 보상해 준다”며 “공기업은 보상에서 꽉 막혀 있으니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차별화된 보상이 없으니 공기업 직원들은 정해진 일만 하고, 더 일을 하게 되면 툴툴거리는 문화가 고착됐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공기업 평가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확한 지표와 경영 목표가 제시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천공항의 경우 공기업 평가를 받기 위해 500~600쪽에 달하는 경영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선진기업 평가서는 서너 쪽에 불과해도 정확할뿐더러 직원들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많은 보고서를 나도 안 읽는데 평가하는 교수들이 다 읽어나 보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직원 몇 명 자른다고 공기업 개혁이 되는 게 아니라 리더에게 채용·보상 등의 인사 전권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글=장정훈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이채욱 사장=경북 상주 출신으로 1972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89년 삼성과 GE의 합작사인 삼성-GE의료기기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6년간 연평균 45%의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96년부터 GE초음파의료기기 아시아 성장시장 총괄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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