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우석대 한의대 본과 1년 김자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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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날 저녁, 방문 앞에 누군가 보따리를 부둥켜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아버지셨다.

엄마가 담근 김치와 그밖의 반찬거리를 들고 딸자식 자취방을 찾아왔다 문이 잠겨 문밖에서 기다리시다 그만 졸음에 빠진 것이다.

아버지를 깨워 방안으로 모셔놓고 얼른 화장실로 갔다.

술냄새를 지우려 이를 닦고 찬물로 세수도 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지어드리려고 냉장고를 여니 찬거리라곤 계란만 딱 두개 남아 있었다.

한개는 프라이, 또 한개로는 계란말이를 해 가져오신 김치와 함께 내어드렸다.

아버지는 차시간에 늦겠다며 그 보잘것없는 찬에 서둘러 저녁을 드시고 떠나셨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께 무심했던 내 자신을 책망했다.

뭐 그리 잘났다고 부모님을 무시했던가.

부모님들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공부해 대학에 들어왔고 또 다니고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에 죄책감까지 몰려왔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셨다.

무얼 놓고 가셨나 하고 방안을 둘러보는 내게 아버지가 무언가를 꼭 쥐어주셨다.

"니네 엄마가 삼만원밖에 안줘 차비하고 이것밖에 안남는구나. 고기라도 사먹어라. " 손을 펴보니 만원짜리 한장이 꼬깃꼬깃 접혀있었다.

서둘러 가시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난 그만 펑펑 울고말았다.

그 무섭던 아버지가 이제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돼있었다.

어릴 때 혼내시던 것처럼 "여자애가 무슨 술이냐.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라는 꾸지람을 듣고싶다.

아버지, 당신이 쉰이 다되 낳은 자식이 처음으로 아버지라 불러봅니다.

아버지! 오래 사세요. 공부 마치고 보약도 직접 지어올리겠습니다.

우석대 한의대 본과 1년 김자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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