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김정하기자의 정치 따라잡기(8월 셋째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정치부의 김정하 기잡니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휴가는 다들 잘 다녀오셨습니까. 정치권도 원래 8월은 국회가 거의 열리지 않고 또 의원들도 외국에 많이 나가기 때문에 한가한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요즘 정치권은 소위 과거사 논쟁으로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운데요 지난주엔 멀쩡하던 집권당의 당 대표가 하루 아침에 낙마하는 파문이 있었습니다.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인 신상묵씨가 일제 말기에 일본군 헌병 오장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신의장이 의장직을 내놓은 것이죠. 원래 이번 파문은 7월 중순 한 네티즌이 진보누리라는 친민노당 성향의 사이트에 신상묵씨가 일제때 친일 경찰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한게 발단이 됐습니다.이게 몇몇 신문에 보도가 되자 신 의장은 “언론이 오보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아주 펄쩍 뛰었습니다.그렇지만 지난 16일 주간지 신동아는 신상묵씨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일본군에 입대를 해 헌병 오장으로 있으면서 일본군 징병기피자들을 색출하는 일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오장이란게 지금으로 치면 하사 정도 되는 계급이라고 합니다. 16일 오후에 보도가 나올때 신의장은 부산에 있었는데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보도 내용이 맞다고 시인을 했습니다.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야당에게 친일진상규명을 위한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과거사 청산에 열을 올렸던 신 의장이었기 때문에 당에선 큰 충격을 감추질 못했습니다. 일부에서 거짓말을 한 신 의장이 당 의장직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당연합니다.그러나 처음부터 신의장이 물러날 생각은 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노무현 대통령은 다음날인 17일 아침에 신의장한테 전화를 걸어 가볍게 처신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그리고 그 전화를 받고 난 뒤 신의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당장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뜻을 비췄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천정배 원내대표,신기남 당 의장,정동영 통일부 장관,즉 이른바 ‘천신정’ 3명이 당권파 연합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중 한 축인 신기남 의장이 무너진다면 당내 역학관계엔 상당한 변화가 생깁니다.당헌상 신 의장으로부터 의장직을 승계할 사람은 한나라당에서 건너 온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인데 이는 당권파가 원하지 않는 그림입니다.당권파는 적절한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신의장 체제가 유지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17일 저녁 일부 언론에 일제때 신의장 부친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생존자들의 육성 증언이 또다시 터져나오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악화되는 여론을 막기위해 신 의장의 조기 사퇴가 불가피해진 것이죠. 결국 18일 신 의장은 광복회를 찾아가 선친의 친일 행위를 사죄하고 19일 의장직을 내놨습니다.그사이 권력 진공사태에 빠진 열린우리당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당권파는 천정배 원내대표의 위상을 강화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방안을 염두에 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러면 당 의장 승계순번인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의 양해가 필요한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부영 위원이 모처럼 찾아온 당권 장악의 기회를 고분고분 넘겨줄리 만무했습니다.결국 진통 끝에 18일 밤 중진의원 다수가 모여 당권을 이부영 위원에게 넘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어쨌거나 당이 큰 위기인데 공연히 분란을 확대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죠. 흥미로운건 이 시기의 한나라당의 반응입니다.예전같았으면 지도부가 모두 나서 여권에 대한 총공세를 벌였음직한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습니다.한나라당의 주요당직자들은 신기남 의장이 거짓말을 한 것은 공인으로서 문제라고 일제히 비판했지만 부친의 친일 문제 자체는 거의 건드리질 않았습니다.심지어 신 의장을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된다던가,과거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이 어디있겠냐는 식의 논평도 나왔습니다.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작금의 친일 파동의 불똥이 박근혜 대표에게로 옮겨붙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박근혜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상이 다 알듯이 만주군 중위 출신입니다.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 시절 독립군 소탕작전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여권이 신 의장이 부친 문제로 사퇴했으니 박 대표도 부친의 친일행위가 드러나면 사퇴하라고 공세를 펼 경우 박 대표는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한나라당은 신기남 의장이 물러난 것을 계기로 여권이 사실상 연좌제를 부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815 경축사에서 노 대통령이 국회안에 과거사 진상규명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한 배경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한마디로 박근혜 죽이기라 이겁니다.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독재 인권탄압 등 그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전부 끌어 모아놓을 경우 과거사 청산대상 리스트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여권이 역사청산이란 대의명분을 내세우는데 한나라당이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도 국민 정서상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표는 19일 “친북 용공 활동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킨다면 과거사특위 구성에 동참할 수 있다”며 역공을 펴고 나왔습니다.여권도 심판대에 같이 오르자는 반격입니다. 박대표는 당직자들에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당에서 박 전 대통령과 연관시켜 부담을 갖기 말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정면승부로 나가겠다는 의지표명입니다.박대표는 사실 부친의 후광이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서 물러서는 것은 자기부정이나 마찬가집니다.다만 박대표가 내건 친북 용공 조사 문제는 여당이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과연 타협안 도출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이부영 신임의장은 취임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해방후 국군내 공산주의자 프락치 총책이었으며 변신과 배신에 능했다”며 원색적으로 박 전대통령을 공격을 했고 이에대해 한나라당이 “결국 과거사 청산의 목적이 박근혜 흠집내기라는게 드러났다”며 강하게 반발하는등 당분간 대치국면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우리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행태를 분석해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연좌제의 논리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듭니다.오죽하면 요즘 자기 집안 족보를 다시 뒤져보는 의원들이 늘어났다는 얘기마저 나오겠습니까. 실제로 지금 인터넷에선 또다른 몇몇 유력 정치인의 부친이 일제시대때 뭘 했다더라 하는 식의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앞으로 누가 또 친일의 덫에 걸려 곤욕을 치를지 모릅니다.과거사 청산이란 과제가 무분별한 마녀사냥의 도구로 전락해선 안될 것입니다.여야 모두 과거사 문제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개입시키지 않는 대승적인 자세를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하 기자 ‘정치 따라잡기’ 지난 회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