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日 교과서…일장기.일왕 부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장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 "기미가요가 국가 (國歌) 라는 설명이 없다. " 일본 문부성 검정담당관은 한 출판사의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 편집자한테 이같은 '참고의견' 을 보냈다.

나가노 (長野) 겨울올림픽 시상식 장면 사진에 일장기가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데 대한 불만 표시였다.

편집자가 "일장기를 돋보이게 하면 되느냐" 고 하자 담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교과서에는 일장기가 선명히 부각된 사진이 실렸다.

사진 설명에도 '일장기 (국기) 와 기미가요 (국가)' 라는 표현이 덧붙여졌다.

문부성이 24일 발표한 초등학교.고교 교과서 검정 내용은 국가관 확립이 초점이다.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하는 법이 마련되기 전인데도 문부성은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지침을 내렸다.

4년 전 검정 때보다 지침은 3분의2 가량 줄인 대신 일장기.기미가요 부분을 꼬치꼬치 따졌다.

'국기.국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육성한다' 는 학습지도요령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일왕 (日王)에 관한 검정도 부쩍 강화됐다.

초등학교 6학년생 교과서 2종은 당초 일왕의 사진이 없었다.

그러나 검정을 거치면서 교과서에는 일왕의 공식 행사 사진이 들어갔다.

교과서 편집자는 "사진 게재가 검정 통과의 기준이 됐다" 고 말했다.

대신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는 걸러냈다.

6학년생 교과서의 '젊은 여성도 공장과 전장 등에 보내졌다' 는 구절 중 '전장' 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다.

종군위안부를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이 낱말을 빼고나서 검정을 통과했다.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나 중.일전쟁 발단 부분은 김빼기에 나서 정확한 표현 대신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그쳤다.

이번 검정 결과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교원노조와 출판노련이 문부성 검정을 꼬치꼬치 캐들어가 예민하게 반발했지만 올해는 조용하다.

자민.자유당 연립정권에 보수 색채의 공명당이 가세하면서 일본 교과서의 '우향우' 는 예사롭지 않다.

◇ 교과서 검정 = 민간 출판사가 만든 교재를 문부성이 심사해 합격하면 교과서로 인정하는 제도. 문부성은 교과서 채택을 신청한 책에 대해 '검정의견' 과 '참고의견' 을 통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