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경제력이 곧 역사 지키는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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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국민은 심기가 불편하다. 지난 수년간 우리 경제가 갈지(之)자 행보를 하는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에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끼던 차에 어려서부터 우리 역사로 배워 오던 고구려사를 느닷없이 자기네 것이라 주장하니 이 덩치 큰 이웃이 과연 친구가 될 수 있겠는지 바짝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응해 우리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여러 나라와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역사는 단지 사실의 기술만이 아니고 해석에 의해 재창조된다. 그리고 그 해석이란 것이 누가 권력을 갖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힘의 변동에 따라 역사가 뒤바뀌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결국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지키려면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의 국력이 지속적으로 유지.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학자들은 올림픽에서 매겨지는 국가의 순위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분석한 결과 가장 강력한 요인이 일인당 국민소득과 인구수라는 것을 밝혀냈다. 올림픽 성적이 곧 국력은 아닐지라도 위의 결과는 경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인구가 4700만명 정도로 13억명의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따라서 이 거대한 이웃과 당당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인당 소득의 우위를 상당한 차이로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득의 우위를 지키는 데 있어 작금의 상황은 상당히 어렵다. 경제성장률은 중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현재 비교우위를 갖는 일부 분야에서조차 수년 내에 따라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법은 역발상에 있다. 중국 경제와 떨어져 독립적인 상태에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장열차에 올라타 그 성장엔진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중국이 성장하는 데 있어 한국 경제를 꼭 필요로 하는 분야를 찾아내면 된다. 예컨대 한국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동북아 물류의 거점으로 키우자는 동북아 경제포럼의 제안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천에서 3시간 비행거리에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가 43개나 위치해 있다. 또 부산항과 광양항은 컨테이너 적재량에서 세계 3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물류 이동에 우리의 공항과 항만이 이용되고 서울과 부산 등은 배후 거점도시로 발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직접 중국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구려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좁은 반도에서 벗어나 넓은 만주벌판을 누비었듯 21세기에는 우리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기술의 보호에는 신경써야겠지만 기업의 진출은 보다 과감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중국경제 성장에 편승하는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 시스템과 의식구조를 중국보다 더 개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각종 규제뿐 아니라 교육 및 생활환경까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

상하이(上海)에서는 휴대전화의 일기예보 서비스가 중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나오므로 외국인이라도 불편없지만 서울에서는 아직 한국어로만 나온다. 또 우리는 아직도 삼성전자나 LG전자를 우리 기업으로만 인식하고 이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려 하면 고용감소부터 우려하는 폐쇄적 사고에 젖어 있다. 삼성과 LG가 세계적 기업으로 자유롭게 크도록 하고, 대신 좋은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개방적인 자세다.

정운영 위원의 적절한 지적(8월 20일자 칼럼'절대로 확실한 미래를 위하여')처럼 과거를 지키는 것은 미래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와 맞서는 데 힘을 쏟기보다 상대의 등에 올라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