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기른 정'에 푹 빠진 슈뢰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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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60) 총리가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지지율 추락과 당 내외의 사임압력에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지 않던 그였다. 그 내막이 지난주에 밝혀졌다. 세살배기 빅토리아 덕분이었다.

슈뢰더 총리가 부인 도리스(41)와 함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육원에서 최근 입양한 여아다. 환갑 나이에 어린 딸을 얻은 기쁨에 슈뢰더 총리는 요즘 틈만 나면 사저가 있는 하노버로 달려간다. 정원이 딸린 집 마당에서 새 딸과 모래놀이를 함께하며 놀아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일부 독일인은 왜 하필 러시아에서 입양아를 데려왔느냐고 볼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속사정은 이렇다. 기자 출신인 도리스 여사는 동화작가로 활동할 만큼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아와 불우아동을 돕는 후원자로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시로 남편인 슈뢰더 총리에게 빈곤층 아동의 비참한 현실을 귀띔해 주었다. 부인의 정성에 감동한 슈뢰더 총리는 빈곤아동을 구체적으로 돕기로 마음먹고 러시아에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독일 정가는 모두 환영일색이다. 평소 슈뢰더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야당인 기민연합(CDU) 당수까지 나서 "잘된 일"이라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어린이가 해외로 실려나가기 시작한 지 올해로 50주년이다. 슈뢰더 부부의 입양은 아직도 세계 최대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사례가 아닐까.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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