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와 딸의 사랑 "꼭 말로 해야 아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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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 그러나 그 허전한 뒷모습을 보기 전에는 그 헛기침이, 그 너털웃음이 무엇인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던 사람, 아버지. 한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지만 처음 눈을 맞춘 그 날부터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는 사람.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나와 같이 있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사람, 아버지의 딸. 그런 아버지와 딸이 만났다. '아버지와 딸, 그 찬란한 러브 스토리'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새 영화 '가족'(9월 3일 개봉)에서다.

'가족'은 딸을 향한 가슴시린 부정(父情)을 그린 영화다. 한때 경찰이었던 생선장수 아버지(주현)와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딸 정은(수애)의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어찌보면 '가족'이란 제목만큼이나 뻔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결코 뻔하지 않다.

*** 딸 향한 가슴시린 정

오히려 친구 같은 모녀 관계나 '사나이끼리'라는 정서로 무장한 부자 관계와는 다른 부녀라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아버지와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정서를 제대로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습 절도범인 정은은 사람까지 찔러 감방에 갔다 3년 만에 출소한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정은에게 두부 한 모 권하기는커녕 "왜 왔어? 언제 나갈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정은이 빌려간 돈을 내놓으라며 가게까지 찾아온 조직의 보스 창원의 집요한 협박에 딸을 걱정하기보단 "나가! 나가서 너는 네 식대로 살아!"라고 모질게 말한다. 이런 아버지에게 정은도 "차라리 내가 고아였으면 낫겠죠"라며 맘에도 없는 모진 말로 아버지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아무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줘도 아버지는 아버지고, 딸은 딸이다. 아버지는 정은 몰래 빚을 갚고, 그래도 정은을 놓아주지 않는 보스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는다. 정은 역시 내키지 않지만 백혈병을 앓는 아버지를 위해 골수 검사를 받는다.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여러 요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다. 보스가 아버지를 흠씬 두들겨 팬 뒤 정은의 미장원에 데려와 정은의 눈 앞에서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모습은 연기자조차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고 고백할 만큼 슬픈 장면이다. 그러나 이정철 감독은 이 장면에서조차 수애에게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고 감정을 자제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딸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는 정은이 통곡하는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다.

*** 절제의 연기 매력적

사실 관객의 눈물을 뽑아내자고 작정한다면 그 방법은 어쩌면 쉬울 지 모른다. 그러나 감정을 억누른 덕분에 '가족'은 유치한 최루성 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30년 넘는 연기생활에 처음으로 삭발까지 한 주현의 무게, 짙은 멜로의 얼굴을 하고서도 칼을 든 조직원 역할을 어색하지 않게 소화한 수애의 발견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가족'은 특별한 반전도 없는 밋밋한 영화지만 결코 밋밋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다. 아버지, 그 이름에 눈물짓지 않을 딸이 어디 있을까. 이 영화는 몰랐던, 아니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케하는 그런 영화다. 극장을 나설 때 여기저기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울었어? …나도 울었어."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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