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남북문제와 양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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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제부터인가 남북문제가 제기되면 남북 양비론 (兩非論) 을 들고 나오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적어도 보수.우익이라는 낙인은 찍혀지지 않고 시대적 조류인 민족통합론자에 합류될 수 있다는 속셈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경향이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들도 포함된 일부 논자들은 과거 서독이 동독을 감싸안는 동방정책을 폈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우리 역대 정부의 북한정책의 약점을 파고든다.

역대 정부가 정권 수호 차원에서 북한문제를 악용했기 때문에 남북문제가 풀리지 않고 계속 꼬이고 있다는 논지다.

그렇기에 남북문제가 진전이 없는 것은 양쪽 정부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식이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만 하더라도 북방한계선 (NLL) 의 모호한 성격에서 비롯됐다는 논지를 펴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하겠다.

때문에 이 문제는 남북간에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이 양비론에서 간과하는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 문제를 동.서독 관계에 대입,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같이 인위적 분단을 당했지만 그 성격부터 다르다.

동.서독 문제의 본질은 2차대전을 일으켰던 원죄 값으로 민주.공산진영간에 힘으로 찢어졌다는 데 있다.

우리 문제는 전후 식민지 처리 과정에서 미.소 강대국간의 편의적인 분할책으로 조성됐다.

분단 이후 양쪽간의 대결태세도 현격히 달랐다.

동독은 현상유지책을, 서독은 통일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래서 서독은 평화공세를 적극 펼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남북한은 모두 현상타파의 적대적 정책을 고수했다.

북한의 남침은 그 산물이었다.

역대 정부가 북한과의 대결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의 또다른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대결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군사정권이 정권수호를 위해 북한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측면이 있고, 그것은 엄중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남북문제의 책임을 양비론으로 몰고가도 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북대결국면의 격화는 북한의 남침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쪽에 있다.

수시로 무장공비들을 내려보냈고, 잠수정을 침투시키는 등 남한 사회의 교란이 북한 대남정책의 기조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문제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통일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데 있다.

북한이 트집을 잡는다고 NLL 문제에서 보듯 남북협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다.

유병화 (柳炳華) 교수의 명쾌한 논지 (중앙일보 6월 16일자 7면)에서 보듯 우리 관할수역을 북한이 무력도발로 문제삼는다고 남북협상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는 없다.

남북이 92년 서명했던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전제로 이를 논의할 수는 있다.

대북관계에서 원칙의 문제를 양보하기 시작하면 북한의 기승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은 대북협상 경험의 소산이다.

국지전의 위험성이나 대결국면의 격화를 우려해 유약한 자세를 보이다가는 북한의 전략전술에 말려들 뿐이다.

활보하던 깡패도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비실비실 사라지는 것처럼 북한의 도발유혹을 막는 최선의 길은 유화론 (宥和論)에 있지 않고 힘을 바탕으로 한 원칙의 고수에 있다고 믿는다.

무력도발불용 (不容).흡수통일배제.화해협력추구라는 정부의 대북3원칙은 이번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화해협력을 추구하되 이번 무력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추궁도 기필코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자기 체제의 안보를 위해서도 화해협력의 추구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것으로 본다.

잠수정 침투때 북한의 책임을 묻겠다던 대통령의 의지가 그 말 자체로 사라졌다.

상호주의원칙도 슬그머니 거두어지고 비료 등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상황에선 북한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더 강수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할수록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왜 안나오겠는가.

더구나 왕조체제의 북한으로선 우리 쪽의 선의를 '조공 (朝貢)' 형태라고 떠벌리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이런 형편이니 정부내에 대북관 (對北觀) 의 혼선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의심이 나오게 만든 최근의 대북정책을 정부는 다시 점검하고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서해교전 이후를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를 주시한다.

이수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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