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연평.백령도 주민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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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니 이럴 수가…. " 15일 오전 9시30분쯤 연평도 내항 앞 빈터 - . 남북한 교전 포성이 울리자 이날 새벽 가족을 꽃게잡이 닻자망 어선에 태워보낸 70대 노인 10여명과 부녀자 20여명이 놀라 사색이 다된 표정으로 집에서 뛰쳐나왔다.

최전방에 사는 탓에 웬만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면역이 되다시피 했지만 모두가 이번만은 예감이 좋지 않은 듯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3대째 이곳에 살고 있는 김상조 (金相祖.75) 씨는 "함포가 몇 분도 아닌 5분 동안 계속 터져댄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라며 연신 담배를 빨았다.

불과 15㎞ 떨어진 인근 해상에서 남북한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자 연평도.백령도 등 서해5도는 순식간에 긴장 속에 휩싸였다.

아흐레째 계속된 북한의 영해 침범으로 빚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을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 며 지켜보던 주민들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며 경악하면서도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길 바랐다.

8일만에 모처럼 만선의 꿈을 싣고 오전 7시쯤 꽃게잡이에 나섰던 51척의 연평도 어선들은 포성이 울리자 군의 철수 명령에 따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당섬 부두에 회항했다.

먼바다에서 해군 함정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출항한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던 주민들은 바다로 나갔던 어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아들.남편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어업지도선의 철수지시를 받고 맨 먼저 회항한 인용호 선원 민병태 (閔丙泰.41) 씨는 "포 소리가 계속 울려대고 후방에서 비상대기 중인 해군 군함이 북방한계선쪽으로 급속도로 이동해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며 교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안도는 잠시 뿐 빈 배로 돌아온 어선을 바라보며 생계 걱정에 망연자실해 했다.

조업기간이 불과 보름밖에 남지않은 터에 언제 조업이 재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한호 선장 李정남 (45) 씨는 "이달 한달 꽃게를 잡아 1년을 먹고 사는데…. 막막하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金진하 (65.여) 씨는 "우려하는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북한에 따끔하게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 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백령도 소속 어선 60여척도 백령도~연평도 사이 어장에서 까나리 조업중 회항 조치에 따라 모두 귀항했다.

인천시옹진군과 송림.백령면 사무소 직원들은 비상연락망 및 주민대피시설 점검을 마쳤으며, 백령도.연평도 예비군들도 출동 태세를 갖췄다.

연평도.백령도 등에는 인천 등 육지에 사는 친지들의 안부전화가 빗발쳐 오전 한때 전화가 불통됐다.

연평도 =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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