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권력관리와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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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을 잡기 전엔 하나같이 검찰을 싫어했다.

야당시절 DJ와 YS는 검찰을 공안통치.인권유린과 연결지어 공격했다.

김대중 (金大中) 씨는 검찰과 충돌하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사위로 삼고 싶은 엘리트인 검사들이 양심을 팔고 터무니없이 사건을 조작한다" 고 비난했다.

김영삼 (金泳三) 씨도 마찬가지다.

89년 5월 동해시 선거매수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출두요구에 "국민에게 해명하면 됐지 뭣하러 검찰소환에 응하겠느냐. 검찰은 민심과 거꾸로다" 고 묵살했다.

전두환 (全斗煥) 씨의 경우, 친형이 경찰출신인데다 검찰에 억울하게 당한 친척도 있고 해서 "힘이나 과시하는 기관" 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다시 하나같이 달라졌다.

검찰에 힘을 주고 믿음을 보냈다.

YS는 군의 하나회를 친 뒤 사정 (司正) 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재편했다.

YS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종수 (文鐘洙) 씨는 "국정운영에서 검찰이 발휘하는 역량을 보고 통치권자가 신뢰를 준 것" 이라고 말했다.

全전대통령도 검찰의 업무추진력.국가안위 (安危) 의식을 "다시 보게 됐다" 고 회고한다.

DJ 또한 취임후 검찰의 역할을 재평가했다.

박상천 (朴相千) 전법무장관은 "金대통령은 야당때도 통치에서 검찰이 지니는 중요성을 알았지만 집권 이후 그것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

누구나 권좌에 오르면 국정운영과 권력관리의 두 바퀴를 굴려가는 데 '검찰이 최고' 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거기에 기대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를 지낸 한 인사는 "집권자의 입맛에 맞는 유능한 일처리, 군인 못지 않은 충성심, 권력의 흐름에 민감한 처신과 철저한 보안의식이 YS를 사로잡았다" 고 기억한다.

다른 행정부처의 장관들이 관료장악에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서 YS는 일반 공무원들에겐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다는 불신을 갖게 됐다.

그 불신의 크기만큼 권력운영의 추 (錘)가 검찰로 기울었다.

군의 힘이 빠지고 안기부의 입김이 줄어든 것도 검찰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었다.

'작은 권력'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검찰은 권력운영 전면에 내세워져 헤프게 이용됐다.

검찰 지휘부는 집권그룹에 줄을 대고 통치의 취약한 부분을 '알아서' 보완해주었다.

검찰 모습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12.12와 5.18 관련자 처벌을 YS는 역사 바로세우기의 치적으로 자랑한다.

그러나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 고 했다가 입장을 뒤집는 과정에서 권력의 도구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었다.

지난 대선때 DJ 비자금 수사를 하지 않은 김태정 (金泰政) 전법무장관을 金대통령은 지난주 "바른 법조인" 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당시의 청와대 참모들은 수사중단이 YS의 결정이며, "金전장관은 그 판단을 옮겼을 뿐" 이라고 전한다.

그때 국민회의측은 김용태 (金瑢泰) 비서실장 등 청와대 쪽에 "비자금 수사는 YS의 음모다.

수사하면 DJ 지지자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 이라고 경고했다.

군부 우위의 5공 때보다 민간 대통령인 YS.DJ 시절에 검찰이 '권력의 시녀.통치의 사병 (私兵)' 이라는 비판에 더욱 시달리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런 현상은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검찰을 잘못 쓰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번 국회 529호실 사건이 터졌을 때 집권측은 섣불리 검찰을 끌어들였다가 사법부의 외면으로 망신을 당했다.

金대통령은 "검찰은 추호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말라" 고 강조하지만 권력관리의 환경은 매우 미묘하다.

단임 대통령의 임기 5년과 국회의원 임기 4년의 '틈새' 가 내년에 생겨난다.

내년 4월에 뽑힐 의원들의 임기는 金대통령보다 1년2개월 더 길다.

그러니 정치권 장악력을 유지하기가 간단치 않다.

현 정권의 권력운영에서 검찰 의존도가 줄어들기 힘든 요인이다.

이번 검찰의 물갈이 인사가 그런 상황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현실정치의 요구가 무엇이건 '김태정 파동' '진형구 (秦炯九) 사태' 는 검찰의 행태가 권력의 도덕성을 재는 잣대임을 보여주었다.

통치관리에 있어 집권자와 검찰은 적절한 거리를 둬야 함을 실감케 한 것이다.

金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와 균형이 있는 권력운영이다.

검찰 바로세우기를 위한 권력관리의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

과거 정권과 다른 점은 거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박보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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