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틴틴] 특별한 흡혈귀 세계 더 이상 팬터지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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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섄 시리즈
대런 섄 지음, 최수민 외 옮김
문학수첩 리틀북스, 270여쪽, 7500원

『대런 섄』의 이야기는 2년 전에 시작됐다. 석 달에 한 권 꼴로 꾸준히 출간돼 최근 여덟 권에 이르렀다. 첨엔 평범한 애가 괴물 쇼를 구경하고 거미 한 마리 훔쳤다고 해서 무슨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조수가 된 대런 섄의 행보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괴물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가 했더니, 뱀파이어들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뱀파이어 왕자의 지위까지 올랐다. 지금은 뱀파이어 세계를 철저히 짓밟을 운명을 타고났다는 미래의 뱀파니즈 대왕을 무찌르기 위해 고난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저자의 계획은 20권이라고 한다. 얼마나 더 가공할 만한 이야기가 펼쳐질는지 예측불허다.

세기말부터 현재까지, 어린 자아가 끊임없는 시련과 모험과 극복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아주 소박한 주제를 온갖 종류의 마법과 팬터지와 무협과 SF로 치장한 이야기들이 범람해왔다. 『해리 포터』시리즈와 『반지의 제왕』같은 초대박 성공이 또다시 가능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마법과 팬터지, 무협과 SF를 제재로 삼는 소설들은 불행하게도 두 개의 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의 아류로 취급받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씌어지고 있다.

많은 소설들이 출간되자마자 아류가 되어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원조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절찬리에 진행 중인 아류는 있기 마련이다. 그 아류는 이미 더 이상 아류가 아니라 『해리포터』시리즈와 『반지의 제왕』등과는 다른, 하나의 특별한 무엇이라고 평가해줘도 좋을 것이다. 『대런 섄』은 그런 원조에 도전하는 뛰어난 아류의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다.

『대런 섄』은 반이 뱀파이어인 존재의 삶, 기괴한 캐릭터들의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 뱀파이어 세계의 심층 해부, 뱀파이어와 뱀파이즈의 대결 등을 다루고 있다. 진부할지언정 특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뱀파이어 이야기라도 『대런 섄』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이 엿보인다. 그것은 어떤 뱀파이어 이야기보다도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닮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뱀파이어들은 불사의 몸도 아니고, 마법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인간의 피를 빨아 마셔도 인간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만 빨아먹고, 그저 힘이 매우 세고 인간보다 좀 오래 살 뿐인 존재다. 어떤 이들에게는 ‘일종의 휴머니즘 소설로서 도덕적 기치를 깔고 있으며 타인의 선을 위한 개인적 희생과 같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특별한 뱀파이어들을 창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대런 섄』은 베스트셀러라면 대개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독자로 하여금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가독력, 쿨한 듯 유머스러운 듯 리듬감 강한 간결체, 논리를 함유한 박진감 넘치는 전개력과 거침없는 반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개연성까지.

‘멋지고 무시무시한 읽을 거리’‘짜릿한 공포의 모험담’‘심장을 서늘하게 하는’‘빨리 읽고 싶어 견딜 수 없는’‘정말 살아있는 나이트메어’등의 찬탄에까지 동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 세계 수백만의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권을 기다리게 만드는 뭔가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소재나 주제를 통한 새로운 팬터지는 난감해 보인다. 아직까지 지상에 등장하지 않은 마법, 환상, 기괴한 캐릭터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다른 관점, 다른 그리기 방식을 통한 새로운 팬터지는 여전히 드넓은 처녀림일 것이다. 『대런 섄』은 팬터지의 출구를 제시하는 모범적인 진행형임에 틀림없다.

김종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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