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날마다 좋은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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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총장이 바뀌고 연이어 빈 자리를 메우는 승진인사의 과정에서 변호사가 될 뜻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검찰의 우두머리 급들이 자진해 옷을 벗었다.

사시 4기생에서 8기생으로 껑충 건너뛰었다는데 총장이 배출된 기 (期) 의 동기생이나 선배들은 모조리 사퇴하는 것이 검찰 조직의 관행이란다.

여기서 우리는 명암이 엇갈리는 인생사를 보았다.

친구나 후배의 출세를 축하하면서도 퇴락하는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 '억울하다' 로 꽉 찬 세상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찍는 감독들이 배우를 고를 때 자신의 취향을 따른다.

물론 배역을 잘 소화해낼 사람을 고르겠지만 그가 나를 뽑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모자라다고 할 수 없다.

설사 연기력이 약하다 하더라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내면의 참다움과 착함과 아름다움이 꼭 겉 연기로 나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각 분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독들이 있다.

그들은 제 나름의 기준에 의해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

오르는 이는 하나고 떨어지는 이는 억만이다.

퇴임하는 몇몇의 검사들은 자신들만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의 구석구석에는 자신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꽉 차있다.

유명한 동화 하나를 보자. 먼 옛날에 아들은 없고 딸 하나만 둔 왕이 있었다.

왕은 현상문제를 적은 방을 전국에 붙였다.

그런데 문제가 기묘했다.

30㎝의 선을 그어 놓고는 그 선을 만지지 말고 길이를 줄이라는 것이었다.

정해진 날에 문제를 풀겠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무수히 많은 답을 제시했지만 왕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때 한 청년이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30㎝의 선 옆에 40㎝의 선을 그었다.

왕은 그 청년에게 공주와 나라를 묶어서 넘겨주었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대표되는 영광스러운 출세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저 왕이 자기 기준에 의해 그어 놓은 선이 아니던가.

물질적인 축적으로 뽐내려는 세상에서 이 감독은 동그라미를 그릴 것이고, 저 감독은 삼각형을 그릴 것이다.

머리 좋은 이는 지식을 자랑할 것이고, 근육이 발달된 이는 기운을 자랑할 것이다.

문학가. 화가. 음악가. 종교가. 철학가. 정치가.사업가 등이 각기 행복하게 사는 최상의 길을 주장하면서 따라오라고 손짓할 것이다.

남들이 규정하는 행복을 좇다 보면 끊임없이 헐떡거릴 것이다.

*** 幸.不幸의 씨앗 내마음에

금강경에서 제자 수보리가 석가에게 묻는다.

석가가 행복의 실체를 여실히 보는 최고의 지혜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뭐냐고. 석가는 아무 것도 얻은 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행복으로 가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 호텔의 마스터키처럼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깨달음일 뿐 축적되는 소득이 아니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내적으로 터득하고 규정해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석가는 중생에게 설교하거나, 무엇을 주거나, 얻게 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운문선사는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 즉 "날마다 좋은 날" 이라는 말로 행복이 길 거리에 널려 있다고 답한다.

세상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이 든다고 하고, 비가 많이 오면 장마가 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비가 오면 가뭄이 멈추고, 해가 뜨면 장마가 멈춘다고 생각하면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좋은 날이 된다.

사람과 자연을 포함해 세상은 특별히 누구를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할 의도가 없다.

내 마음으로 저 세상을 행복과 불행의 재료 또는 씨앗으로 만들 뿐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세상을 꾸며주는 쪽에 서야 한다.

정원에 있는 꽃과 그것을 키우는 정원사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보살핌을 받는 꽃은 남에게 좋게 보이지만 자신은 멍한 상태에 있다.

반면 보살펴 주는 정원사는 꽃을 가꾸면서 행복해 할 수 있다.

진열장의 마네킹보다, 그 것에 옷을 입히는 봉제사가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

자신의 행복 지수를 알려면, 내가 꽃이나 마네킹 쪽에 속하는지, 정원사나 봉제사 쪽에 속하는지 가늠해 보면 된다.

선사들은 말한다.

"높이 올려져 있는 것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인연을 따라 거울에 그림자가 나타나거나 숨음과 같고, 업을 따라 우물의 두레박이 오르내림과 같을 뿐" 이라고.

석지명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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