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침략·식민지배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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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왼쪽)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욕 신화=연합뉴스]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를 계승한다.”

취임 후 첫 정상외교에 나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22일 미국 뉴욕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주석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고 지지(時事)통신 등 일 언론들이 보도했다. 1995년 8월 15일 열린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에서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후회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담화는 이후 집권한 역대 일본 정권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토야마 총리가 이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자신이 주장해온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선 “중국과의 상호 입장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외교, 그리고 입장 차이를 서로 인정해주는 관계가 우애(友愛)”라며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 전체 공동체를 구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과거 유럽에서도 독일과 프랑스가 적대관계였지만 석탄과 철강 분야를 중심으로 우호관계를 쌓아갔고, 이는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일 간 현안인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을 동아시아 공동체의 발판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동중국해가) 우애의 바다가 돼야 한다”고 하자 후 주석은 “평화와 협력의 바다가 됐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후 주석은 또 ▶정상 간 왕래를 늘리고 ▶민간 교류 확대 ▶경제·무역관계 강화 및 발전 ▶북한 문제를 포함한 국제 문제 협력 ▶중·일 간 견해 차이는 대국적인 시야로 해결한다는 다섯 가지 제안을 했다.

북한 문제에서는 두 정상 모두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최근 “양자와 다자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후 주석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중국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郞) 홋카이도(北海道)대 교수는 “미국에서 열리는 회담인 데다 아시아의 결속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동아시아공동체=반미’라는 오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신중하게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두 정상은 다음 달 초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또 만난다. 이 자리에선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좀 더 진전될 것으로 일본은 기대하고 있다.

유엔 총회와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하토야마 총리는 2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취임 후 첫 미·일 정상회담을 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무라야마 담화=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은 1995년 8월 15일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가 발표한 담화. 일본의 태평양전쟁 도발과 전쟁 이전에 행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담화는 이후 정권에도 계승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적 견해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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