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유리, 깨지지 않는 예술로 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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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미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천장에 설치된 치훌리의 ‘피오리 디 코모’.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보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그림’으로 스크랩되는 ‘이유 없는’ 현상도 일어났다.

“헬로.” 모니터에 꽉 차는 곱슬머리를 하고, 불량스러운 검은 안대를 걸친 데일 치훌리(68·사진)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는 모니터를 통해 오직 한 매체와만 하겠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작가다. 미국 시애틀에 머물고 있는 치훌리는 세계적 명성을 일군 자신의 유리 작품 대신 평면 유화 앞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천장을 덮은 색색의 유리 조형, 워싱턴주 타코마시의 152m에 달하는 유리 다리 등 그는 깨지기 쉬운 유리에 찬란한 색을 입혀 거대한 동화를 만든다. 빌 클린턴, 빌 게이츠, 엘튼 존 등 미국 명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작품가는 최고 수억원대에 달한다.

◆사고와 사연=‘검은 안대’는 이 화려한 이력을 지닌 작가의 우여곡절 많은 삶을 상징한다. 치훌리는 1976년 영국 여행에서 당한 차 사고로 얼굴을 256 바늘 꿰매고 왼쪽 눈을 실명했다. 72년 스튜디오가 불에 타 작품을 모두 잃었다. 79년엔 파도타기를 하다가 어깨가 탈골됐다. 그후 대형 유리 작업은 하지 못한다. 직접 하는 것은 회화 작업 뿐이다.

이쯤되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낄만하다. 하지만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는 환상적인 팀이 있고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불행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또한 풍요롭지 않았다. “15세에 하나 뿐인 형제를, 16세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동료는 어머니였다”는 그는 모자가 살 집을 따뜻하게 꾸미기 위해 대학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전공으로 택한다.

대학 생활은 순탄했을까. 그도 아니다. 돌연 공부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난다. 그 이유에 대해 치훌리는 “지나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껄껄 웃었다. “너무 많은 파티를 다녔고 친구도 넘쳐 흘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이스라엘 키부츠로, 알라스카로 그는 충동이 일 때마다 근거지를 바꿨다. 알라스카에서는 7개월동안 어부로 일하기도 했다.

◆경험이 빚은 유리=이처럼 드라마틱한 삶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기억된다. 어머니가 공들여 가꾸던 10m 높이의 온실은 치훌리 작품 속 다양한 식물 이미지의 원형이다. 그는 시카고와 런던, 플로리다의 식물원에서 이 유리 식물로 전시를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익힌 전통적인 유리 불기 공예는 그가 유리와 갖가지 재료를 접합시키는 토대가 됐다. 알라스카에서 건져올렸던 굵직한 생선과 바다 생물은 유리 작품에 꿈틀대는 해양의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전세계 200여개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는 “모든 것이 내 작품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무지개빛의 거대한 유리 작품은 더 많은 종류의 빛을 담은 삶의 표상이다.

◆데일 치훌리 전=10월 15일까지 서울 남대문로2가 에비뉴엘 롯데아트갤러리. 02-726-4428.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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