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비빔밥과 ‘IT 융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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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언젠가 서울을 찾은 외국인 친구로부터 ‘한국인은 비빔밥과 닮은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비고 버무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독특한 입맛도 입맛이려니와, 휴대전화 하나에도 카메라에 MP3 기능까지 한꺼번에 담아내려는 취향이 그들 눈에 여간 남달라 보였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우리에겐 서로 다른 것을 섞고 비벼 새롭고도 조화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는 ‘비빔밥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우리 경제의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Convergence)’도 바로 그 비빔밥 문화와 비슷한 것 같다. 인간과 사물, 산업과 기술 간의 물리적인 결합을 넘어 기왕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과정이 서로 많이 닮았다.

융합의 시대는 산업과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무언가가 창조되는 시대다. 그 경계를 허무는 중심에 ‘융합산업의 DNA’라고 불리는 IT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와 IT가 만나고, 건축과 IT가 소통하며, 환경과 IT의 어우러짐이 트렌드가 되고,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미 국내 주요 통신업체들은 자동차 회사들과 손잡고 모바일 텔레매틱스 상용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직접 차를 타고 있지 않아도 휴대전화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와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전자태그(RFID)를 이용해 선박 건조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우리 자녀 세대들의 생활터전이 될 U-City(유비쿼터스형 도시)도 국내 IT인프라의 탄탄한 기반 속에서 에너지 저소비형 ‘u 에코시티’로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때마침 정부도 IT융합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주력 IT 등의 분야를 국가 발전을 위한 5대 핵심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한다는 내용의 ‘IT코리아 미래전략’ 비전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정부와 민간 합동으로 약 190조원에 이르는 재원을 마련, 이들 산업군에 전략적으로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앞서 예로 든 자동차와 조선·의료·건설 등과 같이 융합기술의 파급효과가 큰 분야들에 이 같은 투자가 가시화된다면, 일자리 창출의 시너지는 물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0.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침몰해가던 우리 경제에 IT와 자동차·조선이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해준 것처럼, 지금의 전 지구적 경제불황 파고에 맞설 가장 듬직한 대안은 IT융합 기술이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IT기술이 여전히 각광받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IT와 전통 산업 간의 기술 결합은 충분히 승산 있는 도전 전략이 될 것이다. 다음 달 KOTRA와 벤처기업협회 주관으로 개최되는 ‘IT융합 국제전시회’는 융합기술의 발전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빔밥처럼 우리 곁에 친숙해진 IT융합과 우리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IT강국 코리아의 저력을 ‘IT융합’에서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윤효춘 KOTRA IT산업처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