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미소금융의 미소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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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최근 발표된 ‘미소(美少)금융재단은 낮은 신용도로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금조달 통로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제도는 기업 기부금과 휴면 예금을 재원으로 향후 10년간 약 2조원을 조성해 이를 영세자영업이나 소상공업의 창업 및 운영자금 대출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또 대출 건당 1억원의 한도 내에서 최장 5년 만기에 5% 수준의 금리로 대출한다.

미소금융은 최근 들어 저소득·저신용 계층에 대한 신용공급 서비스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한국적 상황에 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후진국에서나 통하는 모형이며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영세자영업 시장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영세자영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전반적인 경쟁력의 부재와 격심한 경쟁으로 인한 낮은 수익성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추구하는 것은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자영업 시장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단순하게 더 많은 수의 경쟁자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으로 무장한 자영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 이들이 시장의 흐름을 선도할 것이며, 결국에는 영세자영업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비록 후진국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나 최근에는 선진국으로 확산되어 각국의 실정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업모형 개발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되는 고용부진과 양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수단의 하나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적극 수용해 우리 실정에 적합한 한국형 모형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소금융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급조된 ‘일과성 지원 정책’으로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서민금융모델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이자율 문제다. 현재 제시된 5% 내외의 이자율은 시장금리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기부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사업이라는 고민이 반영된 선택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이자율로는 대손비용은 물론 대출기관의 경비를 충당하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결국 사업 수행을 위해 더 많은 기부금 유입이나 정부의 정책적 배려 등 외부로부터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업이나 정부의 관심과 배려가 현재와 같이 지속된다는 희망에만 의존해 사업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접근법이다. 현실적 제약을 감안, 낮은 이자율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대출관련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은 이자율을 부과함으로써 외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금을 배분하는 중앙재단과 집행하는 지방재단 간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소금융의 중앙재단과 지방재단 구분은 은행의 본점과 지점 개념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자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신분상·금전상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는 은행지점과 달리 중앙재단이 지방재단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고작해야 자금배분을 축소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지역사회의 압력을 감안한다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재단을 중앙재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해 독립적 운영권을 보장하되, 중앙재단은 지방재단에 대해 대출에 소요되는 자금상환을 전제로 대여함으로써 지방재단의 책임성을 확보해 대출자산의 건전성 유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