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쌓이는 의혹에 국정조사권 이틀째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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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등을 다루기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 문제를 놓고 여야가 이틀째 팽팽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4대 의혹 (고관집 털이, 옷 사건, 3.30 재.보선 50억원 투입, 파업 유도) 모두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은 9일 특별검사제 도입을 추가로 요구했고, 여당은 검찰의 파업 유도 국정조사 외엔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오랜만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야당이 시민.노동단체들과 합세, 여권을 끝까지 몰아붙이려는데 반해 이번에도 밀리면 하반기 정치는 물론 내년 총선에까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공동여당의 위기의식이 뒤얽혀 합의도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만 한나라당 이부영 (李富榮) 총무가 "특별검사제 도입안을 수용하면 다른 3대 의혹 국정조사권 협상에서 융통성을 보일 수 있다" 고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여권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정조사 문제를 양보했는데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음 수순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따라서 제기되는 방책도 제각기다.

"어차피 김태정 (金泰政) 전 법무부장관이 증인으로 채택될 바에는 옷 사건 국정조사도 받아들여 문제를 한꺼번에 다 털어내자" 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단독으로라도 파업 유도 관련 국정조사를 강행하면 야당이 동참할 것" 이라며 강경돌파론이 나오기도 한다.

김종필 (金鍾泌) 국무총리는 강창희 (姜昌熙) 자민련 총무에게 "여야 공방이 이어지면 환경노동위의 상임위 차원에서라도 먼저 조사를 실시하라" 고 지시했다.

정면대응하라는 독려다.

○…여야 합의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도 국정조사 범위에 대한 뜨거운 설전이 전개됐다.

의사진행 발언에 나선 한나라당 서훈 (徐勳) 의원은 "김대중 정권은 1년반 만에 총체적 부패에 빠져 장관 부인 호화 옷 로비 의혹 사건 등 4대 의혹을 낳았다" 고 주장.

이에 국민회의 한영애 (韓英愛) 의원은 "한나라당은 마약중독자인 김강룡이 털어놓은 '고관집 털이 사건' 과 실체도 없는 3.30 재.보선 50억원 사용설로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며 "이같은 사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당리당략만 좇아서는 안된다" 고 비난.

이어 등단한 한나라당 이재오 (李在五) 의원은 "4대 국정 의혹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 차원이 아니다" 며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 만큼 우리가 나서야 한다" 고 모든 사안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

李의원은 발언 마지막에 신임인사차 국회에 출석한 국무위원들을 향해 "옷을 입다 때가 끼면 벗을 줄 알아야 한다" 며 지난 개각 때 구설수에 올랐던 일부 장관을 겨냥.

이에 대해 손숙 (孫淑) 환경부장관은 "옷이 더러워지면 언제든지 벗을 준비가 돼 있다" 고 응수했다.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선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정부 자체가 국정 4대 의혹의 대상인 만큼 신임 장관 인사를 받기로 한 본회의를 보이콧해야 한다" 는 주장을 폈다.

이회창 총재와 신경식 (辛卿植) 사무총장이 나서 "신임 장관 인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며 본회의 참여를 유도했는데 李총재는 "조폐공사 파업 유도에서 보듯이 정치공작을 하는 검찰에 어떤 수사를 맡길 수 있겠느냐. 반드시 특검제에서 모든 의혹이 밝혀져야 한다" 고 강조.

전영기.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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