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과거사 청산 싸고 전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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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해방 후 국군 내 (공산주의자) 프락치 총책이며, 배신과 변신에 능하다'고 하는 등 맹렬히 비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의장은 취임 후 한 첫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육사에 들어가 일본 엘리트 장교로 중위까지 됐으며, 해방이 되자마자 변신을 해 독립군 광복군 제4지대에 합류하고, 그 뒤에 공산주의자로 변신해 군내 프락치의 총책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박 전 대통령이) 김창룡의 방첩대에 잡히자 자기가 포섭했던 사람들을 모두 다 불어 그 사람들을 죽게 하고 자기는 살아났다"고 했다. "한 나라의 리더가 변신과 배신으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대통령으로) 올라간 것이 옳은 일인지, 앞으로 국가의 리더로 그런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옳은지 얘기해보자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런 이 의장은 지난달 21일 "박 대표가 원한다면 박 전 대통령을 조사 대상에서 뺄 수 있다고 본다"고 했었다.

이 의장은 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을 과거사의 '가해(加害)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가해자 쪽에 섰던 사람들이 (과거사) 조사에 참여해 역사를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한나라당이) 박 전 대통령의 문제 때문에 그의 그늘 뒤에 숨어 과거사 청산 자체를 막고 무산시키려는 것이 온당하냐"고도 했다.

이 의장의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임태희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표는 이에 앞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역사는 역사와 국민의 몫이며, 정치권이 조사하면 정권이 바뀔 경우 또 새로 해야 한다"며 "100년 전의 일이라면 지금은 후손밖에 없고, (그 일을 조사하면) 후손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이 의장 발언으로 여권의 숨은 의도가 드러났다"며 역공을 가했다. 그는 "여권이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특정인(박 대표)을 흠집 내겠다는 숨은 의도를 스스로 드러냈다"며 "그런 식의 정략이 국민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일들을 우려해 과거사 전반에 대한 규명 작업을 역사학자나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자고 했던 것"이라며 "이 의장의 발언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입장을 강화해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이 의장이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과거사를 조사하자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면서 "그런 사람이 여당 대표로 변신한 뒤 갑자기 과거사 규명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강민석.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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