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서규정 '레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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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없이 부르고 싶은 이름 레드

그대에게 가니 가다 못가면 기어서 가리

길은 바퀴로 구르다 퍽, 펑크처럼 숨을 멈춘

김제 만경 대 (大) 노을이여,

잎잎마다 불붙어 떨어지는 가로수를 붙들고 가리

레드 고개숙인 이삭이 출렁이는 농로로

잘못들어선 관광버스를

콩타작하다 멍석 아무말 없이 비켜주던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지도 못한 아낙네와

운전사가 휘둥그레 옛사랑이었음을 서로 발견했을 때

달은 미처 뜨, 뜨질 못하고

후두둑 새떼들은 지평선 바깥으로 자릴 피하니

- 서규정 (50) '레드' 중

요즘은 시 제목을 이렇게 '레드' 로도 붙이나보다.

미국 영화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 유일의 지평선이 있는 김제평야도 한국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에는 숨 멈춘 커다란 저녁 낙조가 있고 그런 환경에서 옛사랑의 해후도 삽입돼 시가 영화처럼 움직이는데 시각과 청각이 반반이다.

요즘 노래의 노랫말로도 쓸만하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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