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안’ 갤러리 아시아지역 디렉터 닉 시무노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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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시무노빅(35)은 추상 작가인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의 난해한 작품을 18세 때 보고 ‘왜 이런 그림을 그릴까’라는 의문을 처음으로 가졌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 트웜블리를 전시·취급하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아시아 대표가 됐다. [김상선 기자]

홍콩에서 도쿄·타이페이·베를린·런던·상하이·베이징을 거쳐 서울까지. 가고시안 갤러리의 아시아 지역 디렉터인 닉 시무노빅(35)이 최근 3주동안 방문한 도시다. 만난 사람은 200~250명 선. 미술 작품 콜렉터와 화랑 관계자, 작가들이다. 세계 일류 갤러리가 발로 뛰고 있다.

‘맥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했으며 하버드 MBA 출신인 그의 변신은 2년 전 본격 싹텄다.

◆가고시안의 동진(東進)=2007년 9월 미술계의 ‘큰 손’ 래리 가고시안(64)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가고시안은 뉴욕에 셋, 런던에 둘, 로마와 로스앤젤레스에 각 한 개의 갤러리를 가지고 전세계 파워 콜렉터를 상대하는 화랑 대표다.

시무노빅은 아시아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상하이나 베이징에 아시아 지사를 세워야한다는 주장이었다.

가고시안은 2008년 9월 관세와 물류가 자유로운 홍콩에 아시아 지사를 설립하고 시무노빅에게 총괄 디렉터를 맡겼다. 시무노빅은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를 아시아 미술 시장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맥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컨설팅을 맡았던 곳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이후 하버드 MBA를 다녀와 아예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구겐하임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연 미국 미술 300년 전시로 미술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발로 뛰는 일류=그는 약 두 달마다 한국에 들어온다. 전국의 주요 화랑을 돌고 콜렉터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수집가들의 집에까지라도 찾아가 작품을 추천하고 설명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그의 말처럼 가고시안의 아시아 지부는 ‘찾아가는’ 방식을 고수한다.

“처음 홍콩에 문을 열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시안에 대해 알지 못했다. 현대 미술보다는 고미술품과 가구, 조각 등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래리 가고시안과 시무노빅은 ‘접촉’을 전술로 삼고 직접 사람을 만나는 데에 집중했다. 아시아 지부를 시무노빅과 개인 비서 한 명뿐인, 몸집 작고 민첩한 조직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월 홍콩 아트페어에 가고시안과 런던의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참여한 것은 세계 톱 갤러리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무노빅은 “아시아 콜렉터들이 가장 좋은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화랑과 나의 목표”라고 전했다. 그는 “이제 막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현대 이전의 미술 콜렉터가 많은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흥미로운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작품에 대한 취향이 세련되고 세계 시장에서 현대 미술 작품을 모으는 아트 족(族)이 형성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홍콩에 이어 가고시안의 두번째 아시아 지사가 설립될 가능성에 대해서 그는 “먼 장래의 일로서는 가능성이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김호정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가고시안 갤러리=설립자 래리 가고시안(64)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 캠퍼스에서 그림 포스터를 팔며 ‘비즈니스’를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 1985년 뉴욕에 갤러리를 연 이후 블루칩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을 사서 되파는 데에 독보적 솜씨를 발휘했다. 데이비드 게펜, 찰스 사치 등 전설적인 콜렉터들과 거래하면서 88년 제스퍼 존스의 작품을 1700만 달러, 2008년 제프 쿤스의 작품을 2350만 달러에 사들여 생존작가 작품의 최고 가격을 스스로 경신한 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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