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전교조 명단 공개 요구는 정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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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며칠 전 국회에서 전교조 가입교사 명단공개를 놓고 한 여당의원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사이에 설전이 오고 갔다. 조전혁 의원은 전국 초·중등학교에 재직 중인 전교조 교사들의 현황을 요구했고, 안병만 장관은 그러한 정보공개가 교사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응수하며 조 의원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런데 이를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사안이 워낙 중차대하기에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그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다.

우선 교과부가 그토록 전교조 명단 공개를 회피하는 이유부터 분석해 보자. 교과부는 ‘명단공개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 사상, 신조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일부 법조인의 해석을 토대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명단공개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법조인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전교조의 강한 반발에 대한 우려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듯하다. 결국 40만이 넘는 교원 중 7만여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전교조의 위세에 교과부가 눌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난해 12월 어떤 보수시민단체가 경남 양산 지역의 전교조 교원 490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하자 전교조가 거세게 항의한 것을 보면, 교과부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닌 듯싶다. 그런데 교과부의 위축된 태도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전교조의 반발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전교조는 ‘참교육’을 주창하며 태동된 교원단체다. 전교조 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교육관과 노선이 가장 올바른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광우병사태 관련 계기교육, 반자유무역협정(FTA) 운동, 친북 통일교육, 학력평가 거부, 시국선언 등 굵직한 사안들을 통해 볼 때 전교조는 일관되게 자신들의 무오성을 주장해 왔다.

전교조가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집단이라면, 다시 말해 그들의 사상과 이념이 절대로 옳은 것이고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이 학생들을 위해 최선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집단이라면, 그를 따르는 조합원들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전교조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사실을 만천하에 떳떳이 공표함이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런데도 전교조는 자신들이 무슨 비밀결사인양 가입교사들의 명단 공개를 반대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만일 전교조가 자신들의 교육관을 기피하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이유로 명단공개를 거부한다면 이야말로 의도적 기만행위다. 학부모들의 전교조 기피현상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단 공개 거부라는 얄팍한 임기응변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오히려 왜 전교조의 교육관이 학부모들의 기피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학부모들이 동조하지 않는 노선은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행여 학부모들을 자신들의 계도 대상으로 취급하는 오만은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전교조 가입교사들의 교육적 신념과 사상까지도 개인의 기본권에 해당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전교조는 집단적 교육이념을 공유하는 단체로서 그러한 교육이념은 조합원들의 교육적 견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따라서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조합원들의 신념과 사상은 사적인 것이 아니며,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전교조 특유의 교육관인 셈이다. 학부모들이 전교조 명단공개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은 전교조 지도부의 강령과 노선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조합원들의 이러한 교육관이다. 학부모들은 교사의 교육관이 무엇인지 밝히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끝으로 전교조 회원들께 당부드린다. 명단 공개 요구를 조직의 붕괴를 획책하는 음모로 곡해하지 말고, 오히려 전교조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아 달라고. 부디 7만여 교사들의 열정과 식견을 바탕으로 사랑받는 전교조로 환골탈태하기를 기원한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바른교육권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