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위서예가 이노우에 예술의전당서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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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외로운 한 마리 늑대'. 유준상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일본 전위 서예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노우에 유이치 (井上有一.1916~85)에게 이런 별칭을 붙인다.

'전위' 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노우에는 일본 서단의 '이단아' 였다. 그는 50년대 기성 서단의 구태의연함에 반발해 종이.붓.먹 등 전통적 재료를 버리고 연필.콘테.수성본드.흑연과 대싸리를 묶어 만든 빗자루 붓.말털 붓 등 스스로 개발한 재료로 일생동안 '빈 (貧)' 을 비롯한 대자서 (大字書 : 한 글자를 크게 쓰는 것)에 매달렸던 인물.

5일부터 예술의전당 서예관 (02 - 580 - 1300)에서 예술의전당과 이노우에 유이치 서울전 실행위원회 공동 주최로 이노우에의 작품 세계가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소개된다.

당시 전통 서단에 논란을 불러왔던 그의 실험이 시작된 계기는 전쟁이었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이던 45년 3월, 교사로 근무하던 초등학교는 B - 29 전투기의 폭격을 맞는다.

수천 명의 시체 더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대량학살의 참상과 정신적 후유증을 그림과 함께 수많은 글자가 겹쳐 쓰여진 형식의 '아아, 요코가와 국민학교' 라는 작품으로 남긴다.

이때부터 그는 획순을 엄격히 따지는 전통 서예의 관습을 무시하고, 개인적 체험을 한 글자 한 글자에 '몸을 던져' 그림으로써 표현해나가기 시작한다.

오늘날 서예가 대중과 유리된 이유 중 하나는 쓰여진 문구의 해독이 불가능해 비전문인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 굳이 서구의 액션 페인팅이나 앵포르멜 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글자 한 자의 의미보다는 거기에 실린 '인간' 을 느끼게 하는 표현주의적인 그의 작품이 "서예를 그 문학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노우에 전문가인 우나가미 마사오미 (68) 씨는 "글자의 의미를 앞세우려 하지않는 그의 작품에서 발산되는 박력과 활기에 놀라게 될 것" 이라고 말한다.

30년 넘게 썼던 '빈 (貧)' 은 일평생 가난한 대로,가난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던 작가의 인생역정이 느껴지는 대표작. 예술의전당 전시기획팀 이동국 과장은 " '아웃사이더' 였지만 전통 서예로부터 출발해 고전에 대한 철저한 연마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던 그의 이력을 감안하고 작품을 감상하기 바란다" 며 " '양식화된 전위' 로 진정한 실험 정신이 실종된 지금 '전위 정신' 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하는 작가" 라고 설명했다.

鳥.花.貧.風.乃.夢 등 대자서 1백여 점을 포함해 총 1백37점이 전시된다. 27일까지. 양국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던 일본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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