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엄태환·서우영·이정열 단발 결성 반응좋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천장의 라이트가 꺼졌다. 그러나 5백여 청중은 끈질기게 앵콜을 요구했다.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굴러댔다. 확실한 '판' 을 벌려주지 않으면 무대를 뒤집기라도 할 기세였다.

결국 무대 위 네 젊은이는 내려놓았던 기타를 다시 잡았다. 불꺼진 공개방송 스튜디오는 돌연 콘서트홀로 변했다.

윤도현. 엄태환. 서우영. 이정열. 지난달 말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 10분간 출연하러 나갔다가 30분 넘게 즉석공연을 벌여야했던 네명의 이름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달 초 호암아트홀에서 포크페스티벌 일환으로 열린 이들의 콘서트는 1천석이 순식간에 매진됐고, 거듭되는 앵콜에 역시 30분 넘게 공연을 연장해야했다.

'프로젝트 밴드 김광석' 이란 그룹명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당초엔 포크페스티벌을 위해 1회적으로 뭉친 밴드였다.

그러나 쏟아지는 출연제의를 거부하지 못해 금주에만 4개의 방송프로에 나올 예정이며 6월12일에는 '자유' 공연에도 등장한다. 기계음.샘플링.힙합리듬이 판치는 이 시대에 이들은 통기타 넉대로 무공해 선율을 들려준다.

더벅머리 차림 초기 비틀스처럼 꾸밈없는 외양, 오랜 기간 언더 해역에서 배양해온 청정 사운드가 맑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패기, 풋풋함, 장난기를 고루 갖춘 이들은 3년전 김광석이 비명에 간 이래 스타기근에 시달려온 포크계를 살려줄 '젊은 피' 로 손꼽힌다.

이들은 한명씩 떼어보면 빅스타들이 아니다. 가장 지명도가 높다는 윤도현도 댄스그룹에 비하면 세가 약한 메탈계 스타일 뿐이다. 서우영.이정열은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언더형 가수고, 엄태환은 윤도현밴드 멤버다.

그런데 이 넷이 뭉치면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 를 내고있다. 네명은 활동 장르는 다르지만 80년대말 포크가수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뭉친 것도 정초 열렸던 '김광석 3주기 포크콘서트' 에 함께 선 것이 계기가 됐다.

각자의 선율속에 공통적으로 배어있는 '포크 맛' 에 의기투합해 그룹을 만든 것. 거기서 뿜어난 순수한 힘, 그리고 멤버들 개성의 적절한 조화가 힙합세대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기넘치는 서우영의 기타플레이, 남성적인 윤도현, 여성적인 엄태환 두 보컬의 조화, 기타와 퍼커션을 동시 연주하는 이정열의 능숙한 리듬감각이 멋진 팀웍을 연출한다.

"이들의 노래와 발랄한 만담에 웃고 공감하며 빠져들다보면 어느덧 포크의 맛을 오랫동안 잊고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평론가 강헌의 말이다.

이들의 공연 레파토리는 통기타 입문곡 '로망스' 부터 '조개껍질 묶어' 같은 낭만적 포크송, '담배가게 아가씨' 같은 연가, '소낙비' 같은 저항포크까지 다양하다.

특히 언제부턴가 듣기어렵게된 70, 80년대 저항포크들이 넷의 음성으로 새롭게 재현될때 많은 청중은 가슴이 찡할 법하다. 시대는 갔어도 그때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지 않는가. 네 젊은이는 노래로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들은 고민도 없지않다. 이정열은 최근 독집을 냈고 서우영.윤도현밴드도 여름에 독집을 내기로 돼있어 솔로로서의 활동에 더 신경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는 11월 밴드로서 첫 음반을 내겠다고 밝혔다. "인위적인 '기획사 밴드' 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뭉쳐 음악을 하는게 그렇게 기쁠 수 없어요. 이 기쁨을 팬들과 나누려면 음반밖에 또 있겠어요?"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