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도국 중재하는 한국의 글로벌 소프트파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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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04면

이번 주 미국 피츠버그에서 개최되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받게 될 성적표는 네 번째 G20 정상회의가 개최될 것인가, 그리고 한국이 이를 개최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두 가지 모두에서 ‘예’라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면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미들 파워(middle power)’로서 성공하고 있음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피츠버그에서 보여줘야 할 것

세계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불확실한 만큼 G20 정상회의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다. G20 정상회의의 시작이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전환하게 되면 G20 정상회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직면하게 될 첫 번째 난관이다.

이 난관을 뚫을 논리는 무엇일까. 세계 경제의 불황 속에서 전 세계적인 공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려면 여전히 G20 정상회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차기 G20 정상회의의 개최는 담보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G20정상회의 개최 여부를 경제회복의 종속변수로 만들게 된다.

피츠버그 도심에 위치한 G20 미디어센터. 태극기 등 G20 참가국들의 국기가 놓여 있다. [피츠버그=연합뉴스]

출구전략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봐서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최초의 G20 정상회의, 올 4월 초 런던에서의 두 번째 정상회의 때의 위기의식과 긴박감은 어느 정도 완화된 듯하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다고 해서 더 이상 경제위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는 20세기 후반의 국제경제 질서를 주도해온 선진 서방경제 위주의 정책발상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분명히 우리 세대는 획기적인 기술진보, 기업가의 창의성, 경제활동영역의 확산 덕택에 일찍이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그와 동시에 특정국가의 경제위기가 다른 국가로 더 빠르게 확산되는 불안한 구조 속에 살게 될 운명이다. 더구나 전 세계 부(富)의 80%가 세계 인구의 20%에 편중돼 있고, 자원의 80%를 인구의 20%가 사용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인구 80%의 절박한 생존과 장기적인 발전의 문제를 뒷전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지구적 결정구조는 이제 역사 속으로 퇴장해야 마땅하다. 매년 여름마다 개최되는 G8에서 이들 80%의 고민이 논의된다 한들, 그 진정성이나 효과성에 대해서 80%의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 잊혀진 80%를 끌어안고 가지 않는다면 지구촌은 제2, 제3의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불균형이 초래할 미래의 세계적 위기를 차단할 국제적 논의와 공조의 장으로 규정돼야 마땅하다. 한국은 이런 논의에 공헌할 수 있는, 그 어느 국가도 갖추지 못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열강의 제국주의 각축 속에서 희생되었던 극빈 개도국에서 출발하여 가장 단기간 안에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한 국가다. 한국만큼 개도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동시에 선진국의 고민을 이해하는 국가도 없을 것이다. 선진국 대(對) 개도국의 구도 속에서 이들 양 진영을 오가며 중재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G20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다. 한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은 초대받은 국가로 시작했지만, G20 정상회의가 지금의 경제위기 논의만 다루고 해체된다면 세계는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은 예상된 바이다. 그들은 G20 정상회의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G20을 구성하는 개별 국가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중국이 참여하는데 한국까지 참여할 이유가 있느냐는 노골적인 견제도 있다.

G20을 시작하게 만든 것이 지구공동체 의식이었다면, G20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 역시 지구공동체 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당장의 경제위기 못지않게 현 세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균형과 이것들이 초래할 미래의 재앙을 예단하고 예방조치를 강구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한 지구온난화, 개도국의 빈곤해소와 경제발전에 대한 서구 중심의 접근방법이 한계에 도달했음은 서구 지식인과 정치인들 스스로 자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왜 그러한 결정을 반복하는 구조를 바꾸려고 그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가.

선진국과 개도국의 정상 간에 G20이라는 논의의 장이 열려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나아가 이들이 합의해낼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의 가능성은 세계가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경제위기라는 나쁜 소식도 전 세계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동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면 좋은 소식으로 바뀔 수 있다. 나쁜 소식이 한국의 역량과 무관하게 찾아온 불청객이었다면, 좋은 소식은 한국의 역량 여부에 따라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한국의 글로벌 소프트파워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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