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지금 서민주택 경매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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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인천시 서구 석남동 경인고속도로변에 있는 25평형 서민주택단지인 C빌라.

5층 건물 10여채의 1층 우편함 곳곳에 법원에서 보내온 똑같은 모양의 우편물들이 가득 꽂혀 있다.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담보물인 집이 법원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는 통지서다. 이곳에선 이달 들어 인천지법의 경매공고 때마다 대상 부동산이 서너채씩 나오고 있다. 주민 임모(54.여)씨는 "2년 전 같이 입주했던 200여가구 중 5~6가구를 제외하곤 거의 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거나 가기 직전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세대.연립주택 등 서민주택에 대한 법원경매가 인천에서 봇물 터진 듯 이뤄지고 있다. 2000~2002년 정부가 주택경기 촉진을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기관들이 분양가의 80~90%까지 파격적으로 대출해준 덕분에 내 집을 마련했던 서민들이 경기침체 속에서 빚을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쏟아지는 서민주택 경매 물건=인천지법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1만1907건의 부동산 경매를 처리했다. 한달 평균 1700건꼴이다. 이정근 민사집행과장은 "외환위기 당시 월평균 1300여건을 처리했는데 지금은 경매 건수가 그때보다 30%쯤 많다"고 말했다.

경매 부동산의 80~90%가 다세대.연립 주택들이다. 17일 경매20계가 집행한 242건 가운데 아파트.상가.대지 등은 20건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서민주택이었다.

인천지법은 18일 현재 아직 처리하지 못한 부동산 2만452건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개뿐인 입찰법정을 토.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완전 가동하고 있다. 수.금요일은 2개의 경매계가 한꺼번에 입찰을 보기도 한다.

18일 현재 1만4000건의 경매대상 서민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은행 인천NPL(무수익여신)관리센터는 지난해부터 매월 1000여건 이상씩 경매에 넘기고 있다. 관리센터 측은 "국민은행 전체의 빌라경매 물건 중 3분의 1이 인천.부천에 몰려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 내집 마련 2년 만에 다시 무주택자로=이처럼 인천지역에서 서민주택 경매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은 2000년 이후 2년여 동안 이 지역에 5만채 이상의 다세대.연립주택이 집중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부양책으로 다세대.연립주택에 대한 건축규제가 풀린 데다 은행들이 앞다퉈 분양대금의 80~90%씩을 융자해주자 서울에 가까우면서도 땅값이 싼 인천.부천지역에 건축 수요가 몰렸던 것이다.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H빌라에서 만난 김모(48)씨는 "당시 서울 외곽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1000만원 안팎의 자기 돈으로 내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에 인천.부천지역으로 몰렸는데 이제 다시 무주택자로 되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 집값 하락으로 대출금 상환불능=2년 전 분양가가 8800만원이었던 석남동 C빌라의 경우 현재 감정가는 6000만원 정도다. 주민 박모(52)씨는 "입주 당시 은행에서 7000만원을 대출받았는데 그동안 집값이 떨어져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다 결국 경매까지 가게 됐다는 설명이다.

경매에서 2~3회 유찰된 다음에는 낙찰가가 3000만원도 안 된다. 이렇게 대출금보다 낮은 헐값에 낙찰되면 집주인은 한푼도 건지지 못한 채 집에서 나가야 한다. 국민은행 인천NPL관리센터의 이홍우 과장은 "채무자 대부분이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많아 은행으로서도 경매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세입자는 더욱 문제=더 큰 문제는 세입자들의 처지다. 현행 임대보호법상 전세금 4000만원 이하에 대해서만 낙찰가액의 절반 범위 내에서 1600만원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돌려받는 돈은 전세금의 절반도 안 된다. 인천지법 민사집행과의 이동승 계장은 "경매 업무보다 벼랑 끝에 몰린 세입자들의 상담 요청에 응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석남동 C빌라의 세입자 윤모(37)씨는 "이곳에선 빚 때문에 집이 넘어가거나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워낙 빈번해 '법원에 볼 일이 없는 집안이 없다'는 한탄이 나돌 정도"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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