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내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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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02면

얼마 전 인터뷰를 하러 가기 위해 취재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거기 어떻게 찾아가면 되죠?”
“아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내비에 ×××찍고 오시면 돼요. 제가 지금 회의 중이어서… 이따 봬요.”
“….”
내비, 내비게이션. 요즘 웬만하면 차에 하나씩 다 달아놓으셨죠. 어디 갈 때, 특히 초행길일 때, 무척 편리합니다. “200m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어휴, 내비가 없었을 땐 어떻게 다녔을까요.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 제법 있습니다. 전화번호도 이젠 더 이상 외우지 않습니다. 휴대전화에 다 저장해 놓잖아요. 이름 검색하거나 단축번호 한번 꾹 눌러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기자 초년병 시절이 생각납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삐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기자실 여직원들의 암기력은 대단했죠. “(후배 기자) ×××좀 불러주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전화 버튼을 누릅니다.

노래방은 어떻습니까. 화면에 줄줄 나오는 자막 따라 그냥 불러젖히면 모두 ‘카수’ 아닙니까. 가사 외워서 부르는 사람, 본 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기계만 믿고 또 따라 하면 그냥 다 만사형통일까요.

야유회 갔다가 계곡에서 노래 한번 불러볼라치면 최신 가요는 가사가 생각이 안 나 늘 7080 노래만 부르지 않으십니까.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져 남의 전화 빌렸는데 남편, 아내 번호가 가물가물하진 않나요.

‘용불용설(用不用說)’ 아시죠. 이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요. 머리는 모자 쓰라고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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