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더] 美전략연구소 전소장 로버트 죌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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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하면 아주 큰 일을 할 사람' - . 미 워싱턴 정가에서 로버트 죌릭 (45) 전 (前)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CSIS) 소장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베테랑 행정가.전략가이자 국제경제 전문가인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버드대 법대를 최우수 졸업하고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 자문관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재무부 국제금융기구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그는 국무부로 옮겨 장관 법률고문 및 경제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독일 통일 당시 소위 '2+4' 협상체제 가동의 막후 역할을 맡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을 받았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백악관 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이처럼 그는 40세 이전에 이미 화려한 공직을 거의 섭렵했다.

현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그는 미국 최대의 주택할부금융회사인 패니 매의 수석부사장을 지냈고, 최근 1년간은 미 해군사관학교의 국제안보담당 석좌교수로 근무하기도 했다.

올해초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와 관련, 미 의회가 연이어 청문회를 개최했을 때 단골손님으로 초청돼 해박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과시, 의원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올초 CSIS의 소장으로 선임됐다가 며칠 전 사표를 냈다.

당시 CSIS는 그를 소장 자리에 앉히면서 "21세기를 앞두고 실천 가능한 전략적 구상을 제시해야 할 정책연구기관을 이끌 인물로는 최적임자" 라고 평가했다.

지난 62년 설립된 CSIS는 헤리티지.브루킹스 연구소와 함께 미국내 3대 민간 싱크 탱크 가운데 하나. 자산규모 3천만달러, 연간수입 1천7백만달러, 연구진만 1백8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조직 (연구기관으로서는) 이 40대의 젊은 죌릭을 책임자 자리에 앉힌 데 대해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검증된 인물이다.

죌릭은 그러나 CSIS측과 곧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갖가지 강연과 자문으로 가득 채워진 죌릭의 일정이 2000년 대선과 관련해 공화당측의 선거전략 지원과 점차 연계되자 연구소 이사진에서 제동을 걸기 시작했던 것. 정치적 일정을 줄이라는 이사회의 요구에 대해 죌릭은 "내가 맡은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겠다" 고 맞섰다.

죌릭은 결국 사표를 던졌다.

그는 곧 조지 부시2세 텍사스 주지사의 대선 캠페인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하면 중용될 것이란 소문을 재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죌릭은 독일 통일의 배후작업에 깊숙이 관여해 유럽 정치와 전략에 정통할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현실적 포용정책' 을 지지하는 글을 여러 차례 발표하는 등 아시아 문제에도 밝은 인물이다.

죌릭의 글에서는 키신저나 브레진스키 등과 같은 지난날 미국의 대표적 전략가들의 냉철한 사고가 묻어난다.

21세기 미국의 대외정책은 아무래도 죌릭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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