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과거사 덮은 덩샤오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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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

전임 국무원 총리이자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장 리펑(李鵬)이 18일 관영 신화사(新華社)를 통해 기념사를 발표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것으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홍위병과 극좌파가 남긴 무수한 정치적 갈등관계를 덩샤오핑이 어떻게 처리했느냐를 평가한 부분이다. 리펑은 "극좌파 정리문제는 이미 당의 교조처럼 변해 중국 공산당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모든 당의 핵심사업을 경제 건설로 집중시켰다"고 회고했다.

풀어 말하면 덩 자신이 문화대혁명의 큰 희생자이면서도 이를 몰고온 좌파에 대한 숙청보다는 경제 건설을 통한 국력 회복에 국가경영의 중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유명 잡지 '난펑촹(南風窓)' 최신호도 "과거의 극좌파나 '사인방(四人幇)'의 허물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덩샤오핑은 끝까지 조화를 모색했다"며 "마치 피아노의 대가처럼 화음을 만들어 내려 애쓴 결과 중국 정치권의 단합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덩이 권력을 회복한 1970년대 말부터 문혁파와 수많은 홍위병의 색출.검거에 국력이 집중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고도 중국이 오늘날 개혁.개방 20년 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리펑이 덩의 과거사 처리방식을 새삼 평가한 것은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한국 경제의 형편이 더 나쁘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는 이제 과거사 재정리에 몰두키로 했다고 한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만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가 희생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과거사에 매달릴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처지일까. 명쾌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들만 머릿속을 맴돈다.

덩은 왜 청산이 아닌 조화를 택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는 그의 결단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덩 자신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