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첫 업무 노조단체장 접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탈관료주의, 자민당 정권과의 차별화가 관건이다.”

새로 출범한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이 17일 탈관료정치에 시동을 걸었다. 50여 년에 걸친 자민당 정권의 관료주의 사회 타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하토야마 정권의 행보는 첫날부터 주목을 받았다.

◆관료들과 거리 두는 신임 각료=17일 오전 10시15분, 도쿄의 관청들이 몰려 있는 가스미가세키(霞ヶ関)의 농림수산상 건물. 처음 등청한 아카마쓰 히로타카(赤松廣隆) 농림수산상을 맞이한 건 취재기자와 카메라맨 등 30여 명의 언론인이 전부였다. 차관 등 직원들은 모두 평소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날 아카마쓰가 “직원들은 업무에 매진하라”며 전 직원이 현관에 나와 새 장관을 맞이하던 영접행사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아카마쓰는 첫 기자회견에서 “낙하산 단체에 대한 보조금을 2010년부터 삭감한다. 낙하산 인사를 받은 조직은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고 선언해 관료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같은 시각, 인근 후생노동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첫 출근하는 나가쓰마 아키라(長妻昭) 신임 후생노동상을 기다리는 직원 200여 명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날 새벽 총리 관저 기자회견에서 나가쓰마는 “후생노동성의 썩은 고름을 짜내겠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했다.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신임 각료들의 취임 첫 기자회견 모습은 역대 자민당 정권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과거 관료들이 써준 정책 추진 방향 메모들을 읽었던 기존 스타일에서 탈피해 메모 없이 맨손으로 회견에 임한 장관들이 많았다. 하토야마 총리가 “정치인의 목소리로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며 각료들에게 충분히 사전 준비를 하도록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자민당 정권 때는 임명 직후 이뤄졌던 각료들의 기자회견이 새벽으로 미뤄졌다.

하토야마 정권은 메이지(明治) 시대부터의 전통인 각 부처의 ‘차관회의’를 폐지했다. 정치인 각료를 제외한 차관급 이하 관료의 기자회견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각종 정책이 관료들에 의해 왜곡 발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자민당은 재계, 민주당은 노조”=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첫 공식 업무로 일본 최대 노동자 단체인 렌고(連合)의 다카키 쓰요시(高木剛)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과 나가쓰마 후생노동상이 배석했다. 일본 총리가 취임 첫 공식 업무로 노조 단체장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역대 자민당 출신 총리들은 재계와 강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는 각각 취임 이틀째, 열흘째에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만났다.

노조는 민주당의 최대 지원 단체다. 2007년 참의원 선거는 물론 이번 8·30 총선에서 렌고는 민주당을 압승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자민당에 비해 전국적인 조직망은 물론 개인 후원회와 특정 지원 단체가 적은 민주당이 전국 곳곳까지 후보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렌고의 지방조직 덕분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다카키 회장의 손을 잡고 “큰 신세를 졌다. 감사하다”고 정중히 인사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