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가정폭력 방지 법만으로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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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8년 7월에 가정폭력방지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이 법의 제정을 계기로 각종 매스컴에서는 연일 가정폭력 피해사례가 소개돼 우리사회 모두가 가정폭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관심이 커진 만큼 매맞는 여성의 인권이 회복됐는가 생각해보자. 피해여성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상담을 하고 상황을 파악한 후 즉시 경찰이 출동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시키는 일에서부터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보호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피해여성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켜 일정기간 쉼터에 머물도록 하고, 아동이 있을 경우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해주고, 다음 단계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직장을 구해주는 일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까지 관련되는 기관은 우선 피해여성 상담기관이고 다음 단계로 신속한 경찰출동을 위한 경찰청, 그리고 수요만큼 충분한 쉼터 제공을 위한 보건복지부, 자녀 교육을 위한 교육부, 구직을 위한 노동부, 최종적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을 위한 법무부의 지원시스템이 물흐르듯 흘러가야 한해 72만8천여명에 이르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수준은 어느 단계인가.

이제 겨우 법을 제정하고 가정폭력이 개인의 사생활이 아닌 사회전체 문제라는 공론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이슈화한 수준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젖먹이 수준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 좀더 기다려보자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늦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한가롭게 대처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작부터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정폭력방지법 통과 이후 상담전화에 신고된 불만사항을 보면 경찰의 미온적 자세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국의 쉼터 13개도 수용가능 인원 2백28명이 고작으로 72만8천여명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가정폭력피해문제 해결점의 최종 단계가 피해자의 경제적 자립이므로 구직이 되지 않으면 결국 제2, 제3의 가정폭력을 재발시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가정폭력문제는 여성취업문제와 분리해 생각해서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과연 5개 부처가 얼마나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와 같이 여성 유권자를 의식해 마지못해 법만 겨우 제정해 놓고 후속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결과를 얻겠는가.

이제라도 관련부처 및 기관이 한시적 조직인 TF팀 (Task Force) 을 만들어 가정폭력방지법이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IMF사태 이후 급증하고 있는 가정폭력 문제는 예방에서 치료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안된다면, 결국은 가정파괴가 사회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오양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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